안방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 사인 알고보니 범인은.. 반전

입력 2025.12.19 06:07수정 2025.12.19 08:35
안방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 사인 알고보니 범인은.. 반전
당시 현장검증 자료사진./뉴스1


안방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 사인 알고보니 범인은.. 반전
당시 현장검증 자료사진./뉴스1


(청주=뉴스1) 이재규 기자
문 앞에서 멈춘 시간

2016년 5월 21일 오후 3시. 충북 증평의 한 시골 마을. 80대 할머니 A 씨의 집은 유난히 조용했다.

전화를 수십 차례 걸었지만 신호만 갔다. 불길한 예감에 집으로 향한 아들은 대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안방에는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몸은 이미 굳어 있었고, 방 안에는 며칠 묵은 냄새가 배어 있었다. 숨진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듯 보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을 살폈고, 시신은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된 사체검안서에는 사망 원인 '미상', 사망 종류 '병사(자연사)'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 한 줄이 사건의 방향을 정했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더 들여다보지 않았고, 사건은 단순 변사로 분류됐다. 유족은 "문제없는 사망"이라는 설명을 듣고 장례를 치렀다.

그날 수사는 그렇게 멈췄다.

확보하고도 열지 않은 CCTV

경찰은 현장에서 CCTV 메모리카드를 확보했다. 집 안과 마당을 비추는 카메라였다. 농작물 절도가 잦아 유족이 직접 설치한 장치였다.

그러나 영상은 열리지 않았다. 외상이 뚜렷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발급된 검안서에 '병사'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였다.

사건 기록에는 '변사 종결'이라는 문구가 남았다. 초동수사를 맡은 형사도, 이를 지휘한 책임자도 현장 판단을 뒤집지 않았다.

살인이 담긴 영상은 그렇게 봉인됐다.

장례 뒤에 열린 CCTV

장례를 마친 뒤, 유족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혼자 지내던 집을 정리하던 중, 마지막 날을 확인해 보고 싶어 CCTV를 켰다.

그 선택으로 사건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는 한 남자가 담을 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와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장면, 짧은 저항 끝에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후 안방으로 옮겨진 몸과, 범행 뒤 농작물을 자루에 담아 나오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족은 메모리칩을 들고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이번에는 영상이 재생됐다. 그제야 사건은 '변사'에서 '살인'으로 전환됐다.

뒤늦은 체포

5월 23일 오후 6시. 경찰은 이웃 마을에 사는 B 씨(당시 50대)를 긴급 체포했다. 사건 발생 닷새 만이었다.

B 씨는 조사에서 "물을 마시러 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CCTV에는 물도, 대화도 없었다. 성폭행을 목적으로 한 접근과 피해자의 저항, 그리고 이어진 폭력 장면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제야 범행 동기를 특정했다.

수사 멈춘 검안서

할머니의 시신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을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최소 닷새는 지난 상태였다. 시신에는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고, 사망 시점과 원인을 육안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병원은 사체검안서에 사망 원인 '미상', 사망 종류 '병사(자연사)'라고 기재했다. 외상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타살 가능성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이 판단은 의료적 소견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검안서를 근거로 타살 가능성을 배제했고, CCTV를 확보하고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부검은 논의되지 않았고, 유족은 검안서 설명만 듣고 장례를 치렀다.

검안서는 사인을 밝히기 위한 문서였지만 이 사건에서는 수사를 멈추게 하는 문서로 작동했다.

사건이 살인으로 드러난 뒤에야 병원의 검안 과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찰과 보건당국은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사로 분류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판단했고, 해당 병원과 의료진은 행정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가장 중요한 초기 수사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다시 불려 온 현장

사건이 살인으로 전환된 뒤, 경찰은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수화 통역사를 동반한 B 씨는 범행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평소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는 주민과 취재진이 몰렸다.

B 씨는 마당에서 피해자를 밀어 넘어뜨리는 장면과 안방으로 시신을 옮기는 과정까지 비교적 담담하게 재연했다. 일부 주민은 고개를 돌렸고, 유족은 거칠게 항의했다.

법원 "저항하자 폭력으로 바뀐 범죄"

재판에서 쟁점은 범행의 성격이었다. B 씨 측은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B 씨가 성폭행을 목적으로 피해자의 집에 침입했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폭력으로 이어져 살해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범행 이후 시신을 안방으로 옮겨 이불을 덮은 점, 이후 농작물을 훔쳐 달아난 행위는 범행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으로 여겼고 저항하자 생명까지 빼앗았다"며 "범행의 경위와 수법이 잔혹하고 결과가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B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원심은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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