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너 같은 XX가 살아서 뭐 하냐. 끓는 물을 부어버릴 거야."
2024년 10월 27일, 그날도 어김없이 또 시작이었다. A 씨에게 70대 아버지 B 씨의 폭언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늘 있는 일이었지만 익숙해지진 않았다.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게 어언 30년이 넘었다.
A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해왔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집을 탈출하지 못했다. 독립하면 가정폭력에 혼자 노출될 어머니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주 음주했고 폭언을 쏟아부었다. A 씨는 취업 준비에조차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가정환경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술값 줘. 커피도 내놔." B 씨는 그날도 오후 2시 남짓한 시간에 술을 마시겠다며 아내 C 씨를 들들 볶았다. C 씨는 암 투병 중인 환자였다. A 씨는 아버지께 어머니를 그만 괴롭히라고 대들었지만, "너 같은 XX가 살아서 뭐 하냐. 죽어버려라"라는 폭언만 돌아왔다.
A 씨는 화를 삭이려고 방에 들어갔지만 도저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세수라도 해서 찬물이라도 끼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수를 하고 나오려는데 A 씨 눈에 욕조에 꽂혀있는 망치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둔 망치였다. 망치를 보자 '아버지랑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아버지를 망치로 때리면 기절하지 않을까? A 씨는 그렇게 화장실에서 망치를 들고 나와 아버지 B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B 씨는 망치를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B 씨는 오히려 고개를 들어 A 씨를 쳐다봤다.
그 순간 A 씨에겐 두려움과 흥분이 일었다. 아버지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망치는 순식간에 살인 흉기가 됐고, A 씨는 B 씨의 머리를 10회가량 가격했다.
이성을 되찾았을 때쯤 A 씨 앞엔 머리를 수차례 맞은 아버지가 있었다. 당황한 A 씨는 공격을 멈추고 아버지의 머리에서 피를 닦았다. 하지만 B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사건 범행 이후 A 씨는 어머니 C 씨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시도가 실패하자 죄책감으로 그대로 자수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최정인)는 지난 5월 12일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A 씨에게 1심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저질러 왔고 A 씨의 살인의 고의가 미필적이었다는 점 등을 양형 이유로 참작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저질러 피고인과 아내에게 고통을 안겨준 가장이었으나, 이 사건 범행은 현재와 장래의 법익 침해에 대한 우려보단 피고인의 분노가 주된 동기였던 점으로 보인다"며 "다만 피고인이 사건 당일 아픈 모친을 쉬지 못하게 하던 피해자를 만류하다가 폭언을 듣자 쌓여왔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모친도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피고인은 암 투병 중인 모친의 유일한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보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