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K-팝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여성 창작진이 미국의 권위 있는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가 10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서 100위를 차지했다.
포브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각본 및 공동 감독을 맡은 매기 강, 소니 픽처스 프로듀서 미셸 웡 그리고 OST에 실린 다수의 곡을 작곡하고 부른 싱어송라이터 이재(EJAE)를 특기하며, 헌트릭스는 2025년 최대의 문화 현상이라고 짚었다.
지난 6월20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넷플릭스 영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됐다. 현재 3억2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8월에는 헌터릭스의 루미·미라·조이의 실제 목소리 주인공인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가 부른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했다.
특히 '골든'은 앞서 2001년 8월 미국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부티리셔스(Bootylicious)'로 2주간 1위를 차지한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핫100' 1위를 차지한 3인 이상 여성 그룹의 노래가 됐다. '골든'은 지난달엔 전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10억 스트리밍을 돌파했다. 사운드트랙은 미국음반협회(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골든'은 또한 내년 2월 미국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노래상 후보에 올랐다. 12월에는 영화와 노래 모두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도 지명됐다.
이재는 포브스에 "이 영화에는 음악을 포함해서 여러 겹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 점에 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기 강 감독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모든 세대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른다는 건 정말 꿈만 같다"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강 감독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드림웍스와 워너 애니메이션 그룹에서 일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녀의 첫 장편 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소니의 크리스 애펄헌즈 감독이 공동 각본·감독을 맡았다.
포브스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194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간 방문객 6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바티칸 박물관과 맞먹는 수치라고 짚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이러한 관객 증가세가 "부분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밝혔다.
포브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여성들을 단체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에 올린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리즈를 제작하고 만든 건 메기 강 감독과 미셸 윙 프로듀서 그리고 루미, 미라 조이에 생명을 불어넣은 성우들(아든 조, 메이 홍, 유지영)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웡 프로듀서는 "영화 제작진 약 750명 중 거의 50%가 여성이었다"고 추정했다. 앞서 메기 강 감독은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미셸과 저는 여성 아티스트와 인재를 캐스팅하고 홍보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과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이 작품은 여성 서사가 큰 줄기이기도 하다. 극은 퇴마사이자 K-팝 걸그룹인 헌트릭스가 악령이자 K팝 보이그룹인 사자보이스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헌트릭스는 우리 전통 예인의 궁극이기도 한 무당, 사자보이즈는 여전히 다양하게 해석되는 저승사자를 모티브로 삼았다. 극 전체에 무당과 관련한 여성 서사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한국 대중음악 팬의 약 80%가 여성이라는 점(빌보드 2025년 7월 보고서 기준) 또한 이 영화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포브스는 부연했다.
영화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는데 특히 성별, 인종, 연령의 경계를 넘어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내면의 악마와 마주하고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 덕분이라고 포브스는 특기했다.
루미 역의 이재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특정 연령대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내면의 악마를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세에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던 전직 K팝 연습생인 이재는 루미와 같은 스타가 느끼는 압박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 작업과 각본 작업은 10대 시절 K-팝 아이돌 연습생으로서 겪었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윙 프로듀서는 "올해 '골든'을 스트리밍한 사람들의 수를 보면, 희망에 대한 노래나 악마를 물리치는 영화를 필요로 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래가 없었다면 영화가 이만큼 강력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없었더라도 영화가 이만큼 강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은 다른 해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포브스의 추정이다. 이 영화는 구상한 시점부터 공개까지 7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 동안 한국 문화의 인기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한국학 조교수인 정아름(Areum Jeong)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한 것(비영어권 영화 최초 수상), 2021년 넷플릭스 디스토피아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폭발적인 인기, 그리고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 같은 K팝 거물 그룹들의 노래에 영어 가사가 더 많이 사용된 것 등이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틈새시장을 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정 교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성공한 데에는 한국이 이제 '힙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작년 모건 스탠리는 K팝의 '힙함'이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이 더 이상 틈새시장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다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제 K-팝이 빌보드 '핫 100'에 오르는 것도, 한국인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이나 K-팝 콘서트 관객층이 아니었던 연령대의 팬을 공연장에서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포브스는 덧붙였다.
루미, 미라, 조이의 이야기는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소니는 지난달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편 제작 계약을 체결했고 2029년에 후속작이 나올 예정이다. 하스브로와 마텔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상품은 내년 나온다. 사운드트랙이 그래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른 만큼, 오스카상 후보 지명도 예상 가능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어린 시절 자신이 꿈꿨던 이야기를 담았다는 메기 강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둡고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런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을 가져다준다. 이 희망이 제가 80살, 90살,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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