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겨울이니 붕어빵, 풀빵 그리고 군고구마 먹다 보면 봄이 온다. 봄에는 예쁜 벚꽃 보며 달달한 딸기 먹고 그러면 여름이 온다. 여름에는 시원한 팥빙수 먹고 물놀이도 해보자. 어느덧 가을이 오면 예쁜 단풍 구경 하고 제철 꽃게 먹으며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 겨울에 '살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말 한 번만 믿어 봐."
사계절을 보내고 겨울이 오면 '살아 있기를 잘했을 것'이라는 이 글은 부모님에 작은 누나까지 줄줄이 가족을 잃은 20대 청년이 '자살을 예고'한 글에 "삶을 이어가 달라"는 호소가 담긴 댓글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밤새 응원과 위로의 댓글을 남기며 청년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청년은 "감사하다"는 글과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다.
청년의 글은 지난 1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레드에 올라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A씨(27)는 "올해까진 버티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큰 누나 미안해"라며 심상치 않은 글을 올렸다.
앞서 올린 그의 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A씨의 부모님은 2년 전 자취 중인 A씨 집을 방문하기 위해 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9일 뒤 그의 작은 누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20대 청년은 마음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짧은 글을 올렸고 사람들은 걱정과 위로의 글을 달았다. 하루 만에 2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부모님이 보내준 사람들이 여기 댓글창에 다 모여있다"는 한 네티즌의 글처럼 사람들은 청년에게 응원을 보냈다. 이후 A씨는 힘겨운 가운데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말 그대로 '댓글 구조'였다.
모두가 위로했다
실제로 댓글에는 청년을 향한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줌마가 사는 곳은 앞으로 남해바다가 있고 옆으로는 섬진강이 있고 뒤로는 지리산이 있는 하동이다. 당분간 쉴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도 줄 수 있다. 꼭 왔으면 좋겠다"거나 "우리집 오면 방 한칸 내어줄게.아들 셋 육아 하루, 이틀만 하면 배고프다 밥 달라고 하게 된다. 따뜻한 밥 한끼 먹고 생각하자.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아냐"라며 곁을 내어주겠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외국인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대만 사람'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번역기를 사용해서 문법이 이상해도 이해해 달라"면서 "직접 위로를 해 드릴 수 없지만, 맛있는 걸 드시거나 가보지 않은 곳을 걸어보고 음악을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혹시 대만 와 보신 적 있냐. 기회가 된다면 제가 대만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즐거운 곳을 소개해 주겠다. 세상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많다"고 덧붙였다.
과일 소매업을 한다는 또 다른 네티즌은 "올해 귤이 너무 맛있다. 괜찮으면 같이 먹자"고 했고 서울 구의역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사람도 "신메뉴 나오면 택배를 보내도 될까. 나올 때마다 평가를 받고 싶다. 신메뉴가 기다려지도록 열심히 만들어보겠다"며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줬다.
A씨처럼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 힘겨웠던 마음을 공감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살면서 처음 댓글 남겨본다"는 한 네티즌은 "누군지 모를 당신 때문에 집 앞 국밥집에서 한잔하며 눈물을 닦는다"고 했다. 그는 "저도 작년 이맘때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마지막 통화도 받지 못했다"며 " 두 헤어짐 모두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다 내탓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우리 살아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내민 손 중에 어떠한 손이든 꼭 잡기를 바란다"면서 "당신을 염려하며 밤잠을 못 이룰 우리들을 위해서 '.'(점)하나라도 찍어주면 좋겠다"고 적었다.
삶으로 돌아온 청년에 안도
일부 시민은 A씨에게 직접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 위치를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후 소식을 공유한 네티즌도 있었다.
이 네티즌은 "경찰 신고 후 A씨와 통화했다. 현재 집에 있다고 한다"고 알렸다.
덕분에 A씨는 무사히 구조됐다. 이후 남긴 추가 댓글을 통해 A씨는 "경찰관분들이 집까지 찾아오셔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며 입원을 권유하셨다. 상담 후 내일 바로 입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남겼다.
A씨는 "오랫동안 혼자였고 내 삶이라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이 걱정해 주실 줄 몰랐다"며 "정말 감사하고, 걱정 끼쳐 죄송하다"라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치료 잘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며 끝까지 A씨를 응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