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영화 '클레오파트라'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미녀로 손꼽혔던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에 비견된 한국에서 드문 여배우였다. 테일러는 최근 미국 팝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발매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정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의 중심 테마 인물이기도 했다.
고인은 데뷔 전에도 빛나는 외모였다. K-팝 아이돌 초창기 데뷔 과정처럼 '길거리 캐스팅'을 거쳤다. 1957년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눈에 띄어 1957년 열일곱 살에 김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이끈 '1세대 미녀 여배우 트로이카' 윤정희·남정임·문희의 거센 도전에도 김지미의 미모와 위상은 이들의 활약과 별개로 독보적이었다.
김지미는 특히 한국 영화계 최초의 팜 파탈로도 평가된다.
이런 이미지를 구축한 대표작은 '선술집 처녀'(1963·감독 박상호). 황해도에서 월남한 미모의 젊은 과부 '채옥' 역을 맡았는데, 그녀는 처녀를 가장하고 선술집을 개업한다. 이후 이 선술집은 욕정에 들끓은 뭇사내들도 가득했다. 이런 맥락이 설득력을 얻는데 김지미의 외모가 크게 기여한 건 당연지사다.
영화 '불나비'(1965·감독 조해원)의 '민화진' 역은 어떤가. 미스터리물인 이 작품은 미모의 민화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그런데 민화진의 화려한 외모는 그녀를 팜 파탈로 만드는 조건인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 된다. 복수 때문에 남자들을 유혹하는 민화진 역에 녹아들어간 김지미의 외모는 물론 무르익은 연기도 압권이다.
김지미는 또한 '육체의 길'(1968·감독 조긍하)에서 네 남매를 둔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의 가장인 '김상도'(김승호 역)를 유혹하고 파멸에 빠뜨리는 젊고 아름다운 '메리' 역도 근사하게 소화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신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김지미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에도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는 항력(抗力)을 갖고 있다. 결혼, 이혼 과정의 스캔들 모두 영화 같았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홍성기 감독과 1960년 결혼해 4년 만에 파경을 맞은 고인은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과 재혼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62년 유부남이었던 최무룡을 이혼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돼 거액의 위자료를 물었다. 이후 두 사람은 1969년까지 부부로 살았다. 최무룡은 김지미와 갈라서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말을 남겼다.
김지미의 세 번째 남편은 올해 초 은퇴한 '가황' 나훈아다. 11세 연하인 나훈아와 결혼 역시 최무룡과 재혼 이상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나훈아와 이혼한 이후인 1991년엔 자신의 부모 주치의였던 심장병 전문의와 네번째 결혼했다. 이들 부부은 10년 만인 2001년 1월 이혼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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