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챌 의사 없었어" 주장에 "회계 관리 엉망…독단 행위" 질타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피고인은 선지급한 돈을 받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게 법에서 허용한 행위라든가 입주자 대표 회의가 허용해준 건 아니잖아요? 아주 나쁜 관행인 거죠. 누가 그렇게 회계 처리를 하나요?"
수년간 13억원에 이르는 관리비를 빼돌려 개인 빚 상환과 해외여행, 생활비에 쓴 일로 5일 항소심 법정에 선 A(57)씨를 향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이은혜 부장판사가 "규모가 큰 아파트에서 나쁜 관행에 따라, 오랜 기간 회계를 엉망으로 해왔다"고 질타했다.
2016년 3월부터 원주시 한 아파트 경리과장으로 근무한 A씨는 2017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4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그는 지출 서류 결재 등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점을 이용해 관리비를 횡령한 뒤 채무 변제와 해외여행, 신용카드 대금 납부와 생활비 등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165차례에 걸쳐 자신 또는 아들 명의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13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렸다.
지난해 초 자체 회계감사를 진행한 관리사무소 측은 횡령 의심 정황을 발견하고는 A씨를 고발했고, 수사기관은 관리사무소 측이 제출한 거래 명세 등을 분석해 A씨의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피해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았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9천여만원은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13억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을 받던 중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났던 A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양측의 항소로 이날 다시 법정에 선 A씨는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아파트를 위해 선지출한 돈을 다시 받는 건 일종의 '관행'이고, 돈을 운영비로 썼으므로 불법으로 가로챌 의사가 없었다며 억울해했다.
또 1심의 판결에서 유무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무죄 입증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이 모습을 본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써낸 것만 보더라도 회계 관리가 엉망이다. 이 행위는 피고인의 독단적인 행위고 아주 나쁜 관행"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주먹구구식으로 회계 처리를 한 부분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다면 입증 책임은 피고인에게 있다는 법리를 주지시키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구속으로 자료 접근이 제한적인 부분도 이해하지만, 검사가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본인이 입증을 못 했다고 유죄라고 판단했냐고 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피해 아파트 주민들은 A씨를 상대로 1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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