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은 30%, 10년은 절반 떼인다"... 재산분할 무서워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들

입력 2025.10.25 10:00수정 2025.10.25 14:25
유명인 이혼 때마다 ‘가성비의 5년, 약속의 10년’ 밈 확산
법조계 “혼인기간은 참고 요소일 뿐, 기여도가 핵심”

"5년은 30%, 10년은 절반 떼인다"... 재산분할 무서워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들 [주말의 디깅]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재산 뺏길까 봐요"라고 대답한 개그맨 이상준(왼쪽). 이혼 후 재산분할 비율과 관련해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가수 김희철. 출처=(순서대로) 유튜브 '중년 이상준', SBS 예능프로그램'미운오리새끼'.

[파이낸셜뉴스] "32살인데 재산분할 무서워서 결혼하기 싫음." 23일 오전 10시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월 1500만원을 버는 30대 직장인이 "결혼 후 재산이 반으로 줄까 두렵다"며 연애를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혼 시 재산분할 비율을 두고 결혼을 '리스크'로 보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이미 일정 자산을 형성한 3040세대에서 이러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공동명의는 절대 하지 마라", "결혼 전 부부계약약정을 작성해라"는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각종 '재산 방어 꿀팁'까지 퍼지고 있다.

"5년은 30%, 10년은 절반 떼인다"... 재산분할 무서워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들 [주말의 디깅]
사진=디시인사이드 나스닥 갤러리

"가성비의 5년, 약속의 10년"

"가성비의 5년, 약속의 10년"이라는 표현은 이혼 시 재산분할과 관련한 풍자적 표현이다.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이면 재산분할 비율이 7:3수준이고, 10년을 넘기면 5:5가 된다는 세간의 속설을 빗댄 것이다. 이 표현은 2022년 하반기부터 블라인드와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된다.

혼인 기간이 자산 기여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원은 혼인기간에 대해 참고 요소만 볼 뿐, 재산 분할의 비율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법무법인 새올 변호사는 "재산분할 시 분할 비율은 기여도와 재산 형성 정도, 자녀 양육 등 개별 사정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표현이 '결혼하면 손해'라는 정서를 퍼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가나 유명인의 이혼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역시 가성비의 5년", "반갈죽('반으로 갈라져 죽는다'는 뜻으로 만화에서 유래한 밈) 당했다" 는 식의 댓글이 기사와 커뮤니티를 도배한다. 또 지난 6월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그룹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변호사들로부터 "결혼하면 집도 재산분할 청구 대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 결혼 안 해"라며 손사래를 치는 장면이 방송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5년은 30%, 10년은 절반 떼인다"... 재산분할 무서워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들 [주말의 디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결혼생활 토픽에 올라온 게시글. 왼쪽은 2022년 10월에 올라온 글이며, 오른쪽은 위쪽부터 올해 4월, 7월에 올라온 글이다. 출처=블라인드

재산분할, 이렇게 진행된다

협의이혼의 경우 부부가 재산분할 비율과 방식을 스스로 정해 협의서를 법원에 제출한다. 법원은 해당 협의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강요나 불이익이 없는지를 확인한 뒤 인가한다.

반면 재산분할과 관련해 부부 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혼 소송과 함께 별도의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재산분할청구는 이혼이 확정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제기해야 효력이 있다. 절차는 ▲재산 목록 작성 및 입증 ▲분할 비율 결정 ▲조정 및 판결 단계로 이뤄진다.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단계는 첫 번째인 재산 목록 작성이다. 재산분할의 대상은 부부가 혼인 후 공동으로 형성한 ‘공동재산’으로, 부동산·예금·퇴직금·투자자산 등 모든 재산을 파악한 뒤 그중 분할 대상이 되는 자산을 추린다. 혼인 전부터 보유했거나 부모로부터 상속·증여받은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분류돼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혼인 기간이 길어지면 특유재산이라도 관리 및 유지에 대한 기여가 인정되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결혼 전에 내 돈으로 산 집인데 왜 나눠줘야 하느냐”,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인데 왜 공동재산이 되느냐”는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재산 목록이 확정되면 이어서 분할 비율이 결정된다. 법원은 재산 규모, 혼인기간, 각자의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율을 정하며, 지급은 현금이나 부동산 명의이전, 퇴직금·연금 분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혼인 기간이 길수록 부부의 기여도가 비슷하게 평가되어 분할 비율이 5:5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 초반에는 주로 경제활동을 한 배우자의 기여도가 높게 인정 되지만, 혼인 기간이 길어질 수록 가사 노동과 육아 등 비경제적 기여도 역시 함께 쌓이기 때문이다.

'재산 방어' 꿀팁들... 진실은?

공동명의 절대 해주지 마라?
배우자에게 공동명의를 해주면 무조건 재산분할 시 손해를 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재산분할은 재산의 명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즉, 부동산 명의가 단독이든 공동이든, 혼인 기간 동안 배우자가 가사노동, 육아, 경제 활동 등을 통해 해당 재산의 유지 및 증식에 기여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 이 변호사는 "명의는 재산분할시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은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장기간 혼인생활을 유지하며 배우자의 경제 활동을 내조했다면, 특유재산이나 단독 명의 재산에 대해서도 30~50%에 달하는 기여도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명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재산 형성 과정에서 상대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되면 결국 법원에서 분할을 명하게 된다. 단독 명의를 유지하는 것이 재산을 완벽하게 방어해주는 '꿀팁'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5년은 30%, 10년은 절반 떼인다"... 재산분할 무서워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들 [주말의 디깅]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취임식 당시 멜라니아 여사. 사진=연합뉴스

결혼 전 '부부재산약정'을 써라?
세 번 결혼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의 이혼 과정에서 자산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혼전계약서(혼인 전 부부재산에 관한 계약)'의 작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인 '트럼프의 부자 되는법'에서도 "반드시 혼전계약서를 쓰라"고 강조한 바 있으며, 현재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와도 혼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유명인들 사이에서 혼전계약서를 쓰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한국의 부부재산계약은 미국의 혼전계약서만큼 강력한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 민법 제829조에 따르면 부부재산계약은 결혼 생활 중 재산의 관리와 소유 방식을 정하는 계약이다. 그런데 '재산분할청구권'이 혼인관계가 종료된 후에 발생하는 권리다. 이와 관련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권리를 결혼 전에 미리 포기하는 약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한다.
이 변호사는 부부재산약정에 대해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라면서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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