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25억 잃은 男, 불법 리딩방의 실체

입력 2025.10.05 05:00수정 2025.10.05 10:49
8개월 만에 25억 잃은 男, 불법 리딩방의 실체
사진=생성형 인공지능(AI)
[파이낸셜뉴스] 울산에 거주하는 51세 남성 A씨는 아는 사람 소개로 B씨와 연락을 하게 됐다. B씨는 좋은 리딩방 업체를 소개해주겠다며 “시키는 대로만 하면 수익을 볼 수 있고, 설령 손실이 나도 페이백으로 돌려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지인을 추천하면 현금지원을 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꼬드겼다. 달리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한 A씨는 B씨 말대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설치하고 B씨가 지정한 계좌로 투자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HTS는 어느 증권사도 제공하지 않는 허위 프로그램이었다.

거래 끊겠다고 하자 돌변 후 연락 두절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후 주식 종목 추천은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통해 진행됐다. B씨는 초반엔 주식만 권유했지만 점차 파생상품으로 넘어갔다. 항셍지수 선물, 나스닥 선물, 금 선물, 원유 선물 등을 매수하라고 했다. 이와 함께 추가 입금을 요구하고, 수익이 나도 인출하지 말고 재투자하라고 했다. 수수료도 당초 선물 계약 1건당 3달러 정도만 요구했다가, 수익이 크게 나면서 몇 배씩 늘려 받았다.

그 정도가 지나쳐 A씨는 거래를 끝내려 했다. 그러자 B씨는 돌변했다. 계약 위반이라며 막대한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 그러다 일정 수준에서 합의를 보자고 했고, A씨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거짓이었다. B씨는 수익금을 돌려주겠다고 한 날짜에 연락이 되지 않았고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대화방을 탈퇴했다. HTS 접속을 위한 비밀번호도 바뀌어있었다.

이 모든 일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8개월 간 이뤄졌다. HTS 자체가 가짜였기 때문에 실제 수익도, 손실도 나지 않았고 그는 그저 프로그램에 표시된 숫자의 변화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간 A씨는 총 700여 차례에 걸쳐 25억원을 지정 계좌로 보냈고, B씨뿐 아니라 돈도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전문가 나오는 채널도 100% 신뢰 안 돼
A씨가 친분을 믿어 리딩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졌다면 권위를 신뢰한 C씨도 있었다. 충청북도에 사는 50대 여성 C씨는 지난 5월 우연히 ‘상한가연구소(가칭)’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게 됐다. 영상에는 각종 증권 방송에서 자주 보던 전문가들이 나와 미국 나스닥 선물 거래를 추천하며 큰 수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솔깃한 C씨는 해당 채널에 삽입된 링크를 눌렀고 이는 ‘HBT파이낸셜’이라는 사이트로 연결됐다.

간단한 정보 입력을 하니 HBT파이낸셜 담당자는 얼마 안 있어 C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투데이’라는 전용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지정 계좌에 돈을 넣으면 예수금이 충전될 거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본인이 매매 타이밍을 집어줄 테니 그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엔 수익도 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담당자는 재투자를 유도했고, 인출을 하려고 하면 높은 수수료를 들먹이며 이를 억제했다. 그러다 그해 7월 앱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담당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A씨가 70여회에 걸쳐 총 4억5000만원을 송금한 시점이었다.

헉, 하는 고수익이면 불법 가능성 농후
금감원 관계자는 늘 금융투자 상품 거래 시엔 금융사 공식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 모르겠다면 금감원 소비자보호 포털 ‘파인(FINE)’에서 제도권 금융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유튜브 등을 통해 홍보하는 투자 전략, 성공 후기 등은 대표적인 불법업체 유인 수단이다. 최근에는 주식 방송 등에 실제 출연하는 투자 전문가 모습에 인공지능(AI) 기술로 음성을 씌워 만든 새 영상을 유포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식적이지 않은 수준의 고수익을 확언하거나 손실 발생 시 보상 등 비정상적 조건을 제시하면 불법업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모든 투자 사기가 통신사기환급법 적용을 받지는 못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특정 투자 리딩 사기에 대해 환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라고 판시하기도 했지만, 이 판례는 대상이 되는 사건에 있어 기망 수법과 편취한 피해금 사이 대가관계가 없는 경우에 한정된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환급법상 절차를 통해 피해구제를 받을 때도 유의할 점이 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금융사에 피해구제를 신청하면 허위 신고에 의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 초반에 사기범으로부터 받은 수익금을 알리지 않는 경우 사후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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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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