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29일 오후 일본 치바현(CHIBA Prefecture)에 위치한 마쿠하리 메세(Makuhari Messe·幕張メッセ).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재팬(World DJ Festival Japan·월디페 재팬)' 두 번째 날 월드스테이지 피날레를 장식한 미국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체인스모커스'의 대표곡 '섬싱 저스트 라이크 디스(Something Just Like This)' 하이라이트에서 약 2만6000명이 동시에 점프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한국 토종 EDM 페스티벌의 일본 진출의 방점을 찍는 명장면이었다.
명실상부 국내를 대표하는 페스티벌 브랜드 '월디페'가 일본 수출 첫해에 현지에 바로 안착했다. 아티스트나 콘텐츠가 아닌 K-페스티벌의 해외 진출은 이례적이다. 특히 단순히 브랜드 로고나 네이밍만을 수출한 일반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넘어서 '페스티벌의 경험 자체'를 디자인하고 운영 철학·현장 구성·아티스트 섭외·콘텐츠 큐레이션 노하우까지 함께 공유한 첫 해외 진출 사례로 평가 받는다.
특히 K-팝, K-드라마, K-문학에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해에 K-페스티벌까지 현지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월디페'는 국내 첫 EDM 페스티벌이다. 지난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벌' 프로그램 일환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린 이후 다소 부침을 겪었다. 경기 양평, 강원 춘천 등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러다 축제 기획·제작사 비이피씨(BEPC) 탄젠트가 인수 후 전 세계적인 페스티벌이 됐다. 지난달 14~15일 경기 과천 서울랜드에서 열린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엔 양일간 10만명이 운집했다. 특히 이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 첫 내한 무대를 장식한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애니마(ANYMA)'는 아시아 전역에서 큰 화제였다.

월디페 재팬 공연을 마무리한 직후 공연장에서 만난 비이피씨탄젠트 김은성(47) 대표는 "저희는 아시아에서 제일 잘하는 제작사"라면서 "저희가 하는 제작 방법과 연출이 해외에서 통할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그걸 오늘 증명했다"고 말했다.
월디페의 연출을 진두지휘하는 총감독이기도 한 그는 월드스테이지 객석 한 가운데 자리 잡은 FOH(Front of House)에서 열정적인 지휘를 막 끝냈던 지라, 에어컨이 가동된 쾌적한 인도어 페스티벌이었음에도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수십개의 영상과 믹서 등이 놓인 우주조정석 같은 그곳에서 그의 손 끝이 움직이면, 화려한 조명과 불꽃 등 특수효과가 마치 K-팝 아이돌의 군무처럼 일사불란했다.

클로징 쇼엔 스웨덴 3인조 일렉트로닉 그룹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의 '돈트 유 워리 차일드(Don't You Worry Child)',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배경음악으로 김 대표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녹아 들어갔다.
-대표님이 직접 연출하시는 시그니처쇼와 클로징 쇼는 관객이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화면에 관객들 아이디가 뜨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비이피씨(BEPC) 탄젠트에 따르면, 이번 월디페 재팬 관객의 성비는 남자가 60%, 여자가 40%다. 연령은 10대 7%, 20대 70%, 30대 16%를 차지했다. 해외 거주자는 전체의 2%로 일본 관객들이 주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울트라 재팬' 같은 대형 EDM 페스티벌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일본 EDM 페스티벌 현황이 궁금합니다. 이곳에서 월디페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셨던 과정도요.

김 대표는 원래 뮤지션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고, 그 음악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진짜 뮤지션'의 세계에선 천재들만 살아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김 대표가 자신의 음악가 이력을 정리한 '뮤지션 놀이'가 '제작자 김은성'에겐 큰 도움이 됐다. 기본적으로 악보를 볼 줄 아는 데다 음악 관련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제작자로서 어떻게 악기를 배치하고, 악기 연주를 어떻게 했을 때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거다. 뮤지션으로서는 실패였지만, 제작자로서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공연의 규모가 해외에 비하면 너무 작다고 판단, 월디페 같은 대형 뮤직 프로젝트들을 만들었다. 특히 아티스트가 아닌 공연 브랜드 지식재산권(IP)에 주목했다.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벨기에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대 EDM 페스티벌) 같은 대형 IP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 것이다.
-일본 월디페의 성공 요인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외 다른 나라와도 라이선스 수출을 얘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이번에 인건비 다 받았어요. 비행기, 숙박 비용 포함해서요. 저희 기술을 가르쳐드리고 그 노하우를 수출한 거니 제대로 대우 받고 제대로 전달해야죠. 해외에 뿌리는 건 쉬운데, 그걸 성공시키는 건 너무 어렵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와서 첫 회는 적어도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 나라에서 인정받을 거 아니에요. 일본 측 운영도 완벽했어요. 따로 불편한 점 없었죠? 일본 특유의 마이크로한 그런 운영이 너무 좋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저희 노하우를 더 받아서 더 잘하실 거예요. 현재 다섯 개 정도 나라와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인 직전인 나라도 있고요. 월디페가 한국만의 행사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일본 측하고 이견 있었던 게 딱 하나 있었어요. 저는 한국 향기를 다 빼고 싶었어요. 한국 향기가 너무 많이 나면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지장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일본 측은 한국 향기를 많이 풍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아티스트들도 꽤 많이 나왔어요. 오늘 메인 스테이지 1번, 2번 아티스트가 한국 아티스트였어요. 준코코(Juncoco·이준호)&반달록(Vandal Rock·박문석), 정현(Jeonghyeom)이요. 이 얘기가 뭐냐면 지금 한국의 컬처가 일본 젊은 세대들한테 통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K-팝, 한국 컬처가 되게 트렌디하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국과 일본 월디페의 시그니처쇼, 클로징 쇼는 똑같은 스토리예요. 콘텐츠는 거의 같았습니다. 카슈미르, 앨런 워커, 체인스모커스는 작년 한국 월디페에 출연했던 팀들이에요."

물론 코로나 때도 위기였다. 하지만 2020년, 2021년 월디페를 무관객 온라인 무료 공연을 진행하면서 축제를 멈추지 않는 뚝심을 증명했다. 이런 노력은 월디페가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곳곳에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월디페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있다면요.

일본 마케팅·콘텐츠 제작·이벤트 운영 회사인 주식회사 사무라이 파트너스 이리에 고유키(40) 대표이사(CEO)가 이번 월디페 재팬 합자회사 주요 멤버다. 2019년엔 인기 유튜버 히카루와 함께 D2C 브랜드 '리자드(ReZARD)'를 공동 창업했다. 이 브랜드는 어패럴로부터 코스메틱, 호텔업까지 아우르며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는 DJ이기도 하다. 지난달 한국 월디페에서 DJ IRIE라는 이름으로 KDH와 메인 무대에 올라 디제잉을 선보였다. 그는 약 2, 3년 전부터 김 대표와 월디페 재팬 논의를 해왔다. 이날도 김 대표와 끝까지 동석해 이번 월디페 재팬에 대한 흡족함을 드러냈다.

"김 대표님이 제작부터 연출 모든 걸 다 자체적으로 하시는 걸 보고 저희도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대표님과 만나기 전 세계에 있는 유명 페스티벌을 다 보고 왔는데 월디페가 그 안에서 최고였습니다."
-DJ로서 월디페는 서고 싶은 무대인지 무대였나요?
"당연히 그렇죠. 제 무대 때 김은성 대표님이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해주셨어요. 하하."
월디페 재팬은 궁극적으로 '한국형 페스티벌의 세계화 가능성'을 실험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한 첫 무대다.
--이리에 고유키 대표님은 월디페 재팬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싶나요?
"월디페 재팬은 처음부터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어요. 김 대표님과 함께 하면서 지금 1등인 투모로우 페스티벌도 넘을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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