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시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코넛(Conut·배지연)은 그 뿌리를 누구보다 단단하게 붙잡는 법을 아는 뮤지션이다. 2010년대 초반 밴드 생활을 거쳐 올해 솔로로 데뷔한 지 10주년.
파르파릇 푸른 잎 같은 감탄문과 풍성한 열매 같은 느낌표를 자제하는 그녀의 화법은 '서정적 뿌리주의'로 천천히 음악 그리고 사람을 물들인다.
베이스는 그런데 음악의 그루브(groove)를 끌어안기도 한다. 이 악기의 리듬을 다루는 솜씨가 음악의 색깔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넛은 그런 점에서도 발군이다. 최근 발매한 얼터너티브 록 장르의 새 싱글 '낭만를 바라보다(Gazing Into Indigo)'가 증명하듯, 그녀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리듬을 몸으로 직접 쓰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간 블루지한 펑크(Funk), 도발적인 신스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가운데 감성적인 언어로 세밀하게 마음을 톺아봤다.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을 통해 베이시스트로서도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현재 코넛의 열쇳말은 뿌리다. 분주한 세상 속에서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음악과 다른 이들의 안부를 묻는 일.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코넛의 그루브다. 다음 최근 홍대 앞에서 만나 코넛과 나눈 일문일답.
-올해 솔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감은요? 부침이 심한 인디 신에서 이렇게 계속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행복했고 즐거웠지만 '험난했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올 초에 미국 최대 악기 전시회 '남쇼(NAMM Show)'에 갔는데 첫 날에 마커스 밀러 공연을 바로 눈 앞에서 보게 된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 온 정말 존경하는 베이시스트인지라 음악을 시작한 마음가짐이 다시 올라오더라고요. 열정이 피어나기도 했고, 겸손해지기도 했어요. 손가락 기교는 여전하시고, 제가 알던 소리는 오히려 훨씬 더 익어서 '진짜 레전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넛 씨는 어떻게 베이스를 잡게 됐나요?
"초등학교 때 동요를 즐겨 불렀는데, 중학생이 돼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실용음악 학원에서 베이스를 잠깐 배웠다 그만 뒀고, 중 3때 드럼 배우는 친구따라 다시 베이스를 연주하게 됐죠. 고등학교 밴드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대한 마음이 생겼어요. 입시를 결정한 뒤 부모님께 '베이스 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 드렸죠."

"(영국 애시드 재즈 밴드) 자미로콰이 팬이었는데, 그 사운드를 구현해 볼 수 있다는 게 신났어요. 늦게 시작했음에도 다행히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3학년 때까지 열심히 했죠. 살아남으려고요. 그런데 4학년 때 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찾아오더라고요. 왜냐하면 음악에 테크니컬한 것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지금껏 그걸 계속 쫓아왔는데 말이죠. 이후 여러 밴드를 거쳤고,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점에 자작곡으로 싱글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5년 1월에 코넛 첫 싱글 '더 서페이스(The Surface)'를 발매했어요. 타이틀곡 '흘러간다'는 그 때 마음을 표현한 노래예요. 당시 (베이시스트인) 송홍섭 교수님한테 조언을 구했는데 '일단 공연을 많이 해봐라. 일단은 해봐야 된다'고 하셔서 반년 동안 20~30번은 공연을 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좋은 기회들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기회들이었나요?
케이블 채널 SBS MTV와 레드불이 공동 기획한 웜 업 신인 육성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고, 웹드라마 '나의 이름에게' OST '화이트 블러썸'을 불렀어요. 특히 제 곡 '흐린 뒤 맑음'은 삼성 갤럭시 버즈 프로 CF에 삽입돼 큰 도움이 됐죠.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EBS '스페이스 공감'에도 출연했어요.
"코로나 때라 객석에 관객이 없었어요. 그래서 긴장을 더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추억이 됐어요."
-코넛이라는 이름이 너무 귀여워요.
"제가 '코코넛 초콜릿'을 좋아해서 코넛이라 줄여 지었어요. 코코넛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깊은 달콤함과 질리지 않는 매력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이름을 짓고 나니, 코코넛 초콜릿에 더 애착이 생겼어요. 하하."
-'낭만를 바라보다'는 어떻게 만들어진 곡이에요. '델리스파이스의 감성과 유사하다'라는 소개글도 주셨는데요.

-그럼 코넛 씨는 어린 시절에 자미로콰이를 비롯해 어떤 음악을 좋아했어요.
"아무래도 베이스 라인이 정말 잘 짜여진 곡들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 같은 팝을 좋아했었어요. 코넛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디 엑스엑스(The xx)'라는 영국 팀에 꽂힌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 풍을 저만의 방식으로 섞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어요. 일본 밴드 '더 핀.(The fin.)'도 많이 들었어요."
-들어왔던 음악에 더해 계속 새롭게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네요.
"올해 내한했던 일본 밴드 '스이추 스피카(Suichu Spica)' 세션을 했는데 제가 매스록 장르는 처음 접한 거였어요. 원래 저 같았으면 안 해본 것에 대해선 못한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 용기를 냈죠. 올해 도전하는 마음이 더 생겼거든요. 여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계속 찾아가고 있어요. 그게 부담이 되기보다 설레요. 최근엔 릴스 쇼츠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계속 하고 있어요. 아직 정규 단위의 앨범은 낼 계획은 없지만, 기타 연주하는 친구와 프로젝트로 앨범 단위는 고려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올해가 인디 30주년입니다. 부침이 심한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 계속 활동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작년에 '루트 잇 아웃(Root It Out)'이라는 싱글을 냈어요. 작년 한 해 키워드가 '뿌리스럽게 살자'였거든요. 지인이 제게 '뿌리 같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제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프로필을 한동안 뿌리 사진으로 바꿔놓고 다녔어요. 한 타투이스트에게 뿌리로 타투를 받고 싶다고 했고 그가 정성껏 디자인 해준 도안을 제 등 뒤 정중앙에 새겼죠. 이 뿌리를 몸에 새기면서 '루트 잇 아웃'을 썼는데 '음악적으로 무엇인가'가 해소가 되더라고요. 이제 '내 뿌리를 잡고 음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가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 더 조금 더 밑으로 뿌리를 잡고 일어나면 좋지 않을까 해 요."
-음악은 여전히 재밌나요?
"요즘 더 자유로움을 많이 느껴요. 처음에 음악 하고 싶었던 마음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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