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춤 추려 일렉트로닉만 들었다" '월디페' 만나고는…

입력 2025.06.17 16:19수정 2025.06.17 16:19
[페스티벌 情景] 14~15일 서울랜드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현장
"혼자 춤 추려 일렉트로닉만 들었다" '월디페' 만나고는…
[서울=뉴시스] '2025 월디페 현장'. (사진 = 비이피씨탄젠트 제공) 2025.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과천=뉴시스]이재훈 기자 = "춤도 혼자 춰야 해. 그래서 우린 일렉트로닉만 들어!"

영화 '더 랍스터'(The Lobster)(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2015)는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호텔, 솔로의 삶을 선택한 뭉친 숲을 대위법(對位法)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숲에 모인 이들이 혼자 춤을 추기 위한 배경음악 장르로 일렉트로니카를 선택한 것에 공감했습니다. 춤을 추기 위해 혹은 이성을 만나기 위해 클럽에 가는 이들이 존재하듯, 그저 음악에 몰두하기 위해 클럽에 가는 이들도 있거든요.

지난 14~15일 경기 과천 서울랜드에서 열린 대형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축제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하 2025 월디페)에 가기 망설였던 이유죠. 전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올해 관객 10만명 중 외국인 비율은 15%)에서 맵시 있게 잘 차려 입은 '핫 피플'이 대거 몰릴 텐데, 전 거기에 어울리는 핫한 사람이 아닐 뿐더러 홀로 음악에 집중하기도 힘든 환경이거든요. 지난 번에도 갔다가 '빌려온 고양이'처럼 한 켠에 조용이 자리잡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월디페'는 국내 첫 EDM 페스티벌입니다. 지난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벌' 프로그램 일환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린 이후 다소 부침을 겪었습니다. 경기 양평, 강원 춘천 등에서 열리기도 했죠. 이들 지역에서 열렸을 땐 전원 풍경의 멋이 한껏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7년 만인 2017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축제 기획·제작사 비이피씨탄젠트가 이후 토종 EDM 축제인 이 페스티벌을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승화시켰습니다. 작년 영국의 세계적인 EDM 매거진인 'DJ 맥(MAG)' 톱 100이 매긴 페스티벌 순위에서 42위, 동아시아에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역시 사전 예고된 라인업 진용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내 공연장 스피어를 달군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애니마(ANYMA)'의 첫 내한을 비롯해 프랑스 출신 DJ 겸 프로듀서 스네이크(Snake), 노르웨이 출신 DJ 겸 프로듀서 앨런 워커(Alan Walker), 스웨덴 출신 DJ 겸 프로듀서 알레소(Alesso) 등 거물 DJ 겸 프로듀서들이 대거 출연을 예고했거든요.

대중음악 담당 기자가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인 셈입니다. 근사하게 잘 차려입을 자신도 없고 몸도 안 되는 저는 브릿팝 대표 밴드 '오아시스' 팀명이 새겨진 티셔츠에,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애착 헤드폰을 착용하고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혼자 춤 추려 일렉트로닉만 들었다" '월디페' 만나고는…
[서울=뉴시스] '2025 월디페 현장'. (사진 = 비이피씨탄젠트 제공) 2025.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를 중요하게 여겨 지하철이 덜 붐비는 시간에 맞춰 다소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 전 록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도 뒤편에 서서 보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번 월디페의 알레소, 스네이크, 애니마 무대에선 뒤편까지 인산인해였습니다. 애니마 공연 땐 비까지 쏟아져 개인 공간을 더 만들기는 어려웠죠.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심리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좋아지는 때가 있는 것이죠. 애니마의 압도적인 영상 연출 앞에 쏟아진 비(雨)는 또 다른 특수효과였으며, 이를 보고 놀라고 즐거워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저마다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조명이었습니다. 일렉트로닉을 혼자가 아닌 왜 다 같이 즐기는지 수긍이 된 순간이라고 할까요. 슬램을 하지 않고, 서클 핏이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콜라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지면서 각자의 에너지가 하나가 되는 자리. 그걸 월디페가 보여줬습니다. 슈퍼 마리오, 스파이더맨 등 각양각색의 코스프레 의상은 여러 세계관을 통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게도 일렉트로닉은 혼자만의 춤이 아닙니다.

"우리 긴 춤을 추고 있어 / 자꾸 내가 발을 밟아 /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 없나요 /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 마치 없었던 일처럼 / 난 눈을 감고 춤을 춰 접기"(브로콜리너마저 '춤' 중) 일렉트로닉 장르는 아니지만, 제겐 심적인 일렉트로닉이었던 모던록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춤'이 떠올랐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몇 년 째 월디페가 터전을 잡고 있는 서울랜드 역시 이 축제의 독특한 풍경을 빚어내는 데 한몫합니다. 뜨거운 젊은 청춘들이 페스티벌 현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길과 식당에서 여러 가족 단위의 관람객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삶에서 축제는 애초부터 경계선이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접은 유모차를 들고 앉은 부모와 함께 코끼리열차를 탄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 미소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대공원 입구에서 서울랜드 입구까지 가기 위해 이 열차를 타는 건 월디페의 또 다른 별미입니다. 그 아이는 탑승 전 멀리서 들려오는 EDM 소리에 맞춰 '두둠칫'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부모는 함박 웃었습니다.


월디페는 이런 매력을 이제 해외에도 전합니다. 김은성 비이피씨탄젠트 대표는 올해를 기점으로 월디페를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예고했습니다. 오는 28~29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에서 개최되는 첫 공식 해외 공연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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