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뉴스] 오후 6시가 되자 하얀색 철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단조로울 법한 하얀 철문은 황금 봉황과 무궁화, 태극마크 덕에 위엄을 덧입었다.
문이 닫히고 철문 너머로 빼꼼히 드러난 청기와, 그 뒤로 북한산이 보였다. 청기와 하나로 모든 게 설명이 되는 이곳은 도로명 주소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있는 청와대다.
지난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복귀를 공언한 뒤 방문객은 폭증했다. 조만간 출입이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확정된 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월요일이던 지난 9일 청와대를 다시 한번 찾았다. 철문이 쉽게 열리지 않기 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예약하러 들어갔다가 '깜짝'
청와대를 방문하기 전인 지난 4일 청와대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을 시도하면서 여러 번 놀랐다. 이날부터 청와대 탐방로가 정비에 들어간다는 팝업창이 뜨면서 "이재명 대통령 복귀를 위한 정비에 들어가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를 선택하려고 달력을 넘기던 중 또 한 번 놀랐다. 7월 3일 이후 달력의 날짜는 '예약 불가'를 의미하는 회색으로 표기돼 있었다. 확신이 될 뻔한 예상이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재단은 "청와대 경내 탐방로 전면 보수·정비 작업이 시작돼 관람객의 출입을 제한한 것일 뿐"이라며 "이번 공사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무관하다. 이미 예정된 일정이며 대통령 집무실 복귀와 관련해 아직 별도 지침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예약 날짜 역시 대선과 맞물린 오해였다.
청와대재단은 "4주 단위로 예약이 열린다. 7월 6일 예약을 하고 싶으면 4주 전에 들어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탄핵정국이던 지난 3월부터 청와대 주말 예약에 사람들이 몰린 만큼 평일 예약을 시도했다. 가장 가까운 날인 9일을 선택하니 오후 1시30분,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 등 오후 시간대별로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예약할 수 있었다. 예약을 마치고 9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2년 전 한가함은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의 시작과 함께 2022년 개방한 청와대는 그해 가을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예약이 어렵거나, 인파에 떠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달라졌다.
한낮 기온이 30도로 더웠지만, 입장 바코드를 찍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본관 내부로 들어가는 데 대기 시간이 '30분'이라는 피켓도 보였다. 주말에는 '60분'을 넘긴다는 게 청와대 직원의 말이다. 본관에 들어가기 위해 서 있으면서 청와대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이 고향인 남현순씨(63·여)는 "저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인데 고향 친구들을 위해서 왔다. 청와대 오려고 1년에 두 번 갖는 모임을 급하게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면서 "다행히 예약을 할 수 있어 여기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2주간 한국 여행을 위해 덴마크에서 온 20대 여성 클라라 라슨은 "한국의 비상계엄 소식은 덴마크에 있을 때 뉴스로 봤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 한국의 대선 소식을 알리며 '청와대 방문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알려주자 "행운이야(럭키)"라고 작은 탄성을 외쳤다.
본관 안은 더 복잡했다. 특히 국무회의가 열린 공간이던 '세종실'에선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벽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에 윤 전 대통령만 빠져 있어서였다. 최근 대선이 치러진 만큼 별 다른 의미는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2층 대통령 접견실이었다. 줄지어 들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청와대 직원은 "TV에서도 많이 본 장소"라고 안내하며 "평일 중 방문자가 가장 적은 게 월요일인데 선거 후 첫 월요일인 오늘은 마치 주말처럼 많이 오셨다"고 알렸다.
세 시간 넘게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니 어느새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청와대 개방 당시 캐치프레이즈 '청와대 국민품으로' 시설물 앞에서 촬영 중이던 여대생 안미진씨(24)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안씨는 "청와대를 볼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어느 국민도 청와대를 개방해 달라고 한 적 없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수준 높은 정치지 청와대 개방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를 대통령에게 양보해야 한다면 양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청와대를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색 철문도 닫혔다.
8월 1일부터 청와대 관람 중단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방침에 따라 청와대재단은 8월부터 청와대 관람을 중단한다.
10일 청와대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7월 14일까지 현행 관람 방식을 유지하고 이틀 뒤인 7월 16일부터 8월 1일까지 예약 인원과 관람 동선 등을 조정해 청와대 관람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당초 청와대는 온라인 예약을 통해 시간대별로 관람이 가능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내달 14일까지만 운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8월 1일부터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완료까지 보안과 안전 점검을 위해 관람이 임시 중단된다고 밝혔다. 청와대재단은 일단 이재명 대통령의 집무실이 청와대로 완전히 이전되면 관람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집무실 이전 복귀를 위한 예비비를 259억원 편성해 의결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