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윤종빈, 영화와 시리즈 사이에서](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6/07/202506070806010832_l.jpg)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윤종빈(46) 감독 작품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주로 남자 배우들이 나온다는 것, 그래서 분위기 역시 어둡고 칙칙할 때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 역시 빛보다는 그림자에 관해 얘기한다는 것. 그리고 한 작품을 빼면 모두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모두 윤 감독이 직접 극본을 썼다는 점도 있다.
그런데 윤 감독의 7번째 작품이자 2번째 시리즈인 디즈니+ '나인 퍼즐'(5월21일 공개)은 이 키워드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우선 주인공이 여성이고 대체로 밝은 분위기여서 살인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는데도 경쾌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첫 번째 추리물이고 꽤나 만화 같다. 직접 쓴 극본도 아니다. 만약 윤 감독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전작을 전부 보여준 뒤 '나인 퍼즐'도 같은 사람이 만들었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 '나인 퍼즐'은 윤 감독 작품 세계에서 이질적이다. 그는 '나인 퍼즐'이 전작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 생각했다. 안 해본 거라서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재밌었다"고 말했다.
"'수리남'을 끝내놓고 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 대본을 봐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이야기에 힘이 있더라고요. 반전 강박에 시달리다가 후반부에 무너지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서 좋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전체 에피소드를 모두 연출할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1~2회 정도만 제가 하고 빠지려고 했죠. 톤만 잡아놓는 거죠.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중간에 플랫폼도 바뀌고, 배우들이 원하기도 해서 11회 전체를 제가 다 하게 됐습니다.(웃음)"
'나인 퍼즐'은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힘을 합쳐 연쇄살인마를 잡는 과정을 그린다. 얼개는 흔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대표적인 게 이 형사가 이 프로파일러를 이 사건 용의자로 생각한다는 것. 10년 전 미제 살인 사건이 하나 있었고 형사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프로파일러를 유력 용의자로 판단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해 그를 잡아 넣지 못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 미제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살인 사건이 또 발생하고 우연찮게 그때 그 형사와 그때 고등학생이었다가 이제 역시 경찰이 된 프로파일러가 한 팀이 돼 수사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 살인마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퍼즐을 한 조각 씩 보내온다는 설정, 그 프로파일러가 괴짜 천재라는 설정 등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장치들이 하나 둘 덧붙여지면서 이 작품은 다소 만화 같은 이야기가 됐다. 윤 감독은 "처음 읽었을 땐 전혀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가능한 애기 같지도 않았다"며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이게 만화라면?'이라고. 그러니까 말이 되더라"고 했다.
"이런 형사, 이런 프로파일러가 현실에 있을 수가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바꾸게 됐고, 자연스럽게 제가 안 해봤던 방식으로 작업을 하게 된 겁니다. 인물들이 그렇다 보니까 그들을 위한 세계관도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만화적 세계로요. 그래서 이 작품엔 리얼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기존 한국 작품에선 볼 수 없는 장소와 공간이 나옵니다. 경찰 제복만 봐도 실제 경찰 옷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기존 제 작품이 무채색에 가깝다면 '나인 퍼즐'은 색이 화려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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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윤종빈 작품이라는 생각이 안 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종빈 작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장르적 재미, 다시 말해 추리를 해가는 즐거움이 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유려하다는 것 그리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연출은 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바로 그 능력이다. 지난달 21일 공개 이후 '나인 퍼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디즈니+ 최다 시청 작품이 됐고, 국내에선 올해 가장 많이 본 콘텐츠에 올랐다. 윤 감독은 "오히려 추리물 마니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저는 작가가 낚는대로 낚이는 사람이에요.(웃음) 추리물을 보는 수준이 있다면 전 중간 이하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 작가에게 낚일 때 그 느낌에 충실하게 연출을 하려고 한 거죠. 물론 이 작품을 하기로 한 뒤에 웬만한 추리물을 다 찾아봤어요.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게 되니까 '나인 퍼즐'은 좀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던 거고요. 그래서 범인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보여주기보다는 그가 왜 죽였는지 보여주려고 한 거죠."
윤 감독은 2022년 '수리남'을 끝낸 이후 다시는 시리즈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수리남' 이후 새 작품이 시리즈인 '나인 퍼즐'이 됐다. 그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하지 않겠다고 한 건데 어쩌다 보니까 한 편을 더 하게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업계 상황을 볼 때 앞으로 시리즈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수리남'은 제가 찍는 영화 러닝 타임의 3배를 영화 찍는 시간의 1.5배 안에 찍어야 했죠. '나인 퍼즐'은 5배 되는 양을 똑같이 1.5배 시간 안에 찍어야 했어요.(웃음) 하루 할당량 해결하는 공장 같아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이제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젠 OTT 시리즈라는 게 TV 드라마와 또 다른 종류의 작품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좋은 기회, 좋은 상황이 있다면 또 해야죠. 그래도 8부작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어요.(웃음)"
윤 감독은 다시 영화로 돌아온다. 그는 시리즈를 두 편 연속 만들면서 영화가 그리웠고 영화를 향한 사랑이 더 커졌다고 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현재 캐스팅 마무리 단계이고 내년 봄엔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남자들이 우르르 나오는 영화"라고 했다.
"시리즈 두 편을 하면서 영화에 대해, 영화가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국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영화라는 생각을 딱 정립했어요. 극장의 큰 화면에 보여주기 위해 그토록 세밀하게 작업을 하는 게 영화이니까요. 그 예민함과 섬세함이 있어야 영화라는 겁니다. 글쎄요. 요즘 극장 상황이 안 좋아서 다음 영화가 제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합니다. 재밌게 잘해보고 싶습니다."
윤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힌트를 조금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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