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안태현 기자 = 결혼은 무엇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이 되는 것일까, 혹은 사랑하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탈을 쓰게 되는 걸까. 누군가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생존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 '트렁크'가 연 '결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속 담긴 이야기다.
넷플릭스 새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극본 박은영/ 연출 김규태)는 지난 29일 8회 전편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트렁크'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다루는 시리즈로,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기묘하다. 이별했지만 여전히 전부인 이서연(정윤하 분)을 그리워하며 허덕이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 한정원(공유 분)의 집에 미스터리한 여자가 등장한다. 바로 기간제 결혼을 매칭해주는 회사 NM의 소속 직원인 노인지(서현진 분)다. 이서연은 한정원 몰래 기간제 배우자 서비스를 신청하고 노인지가 한정원의 배우자가 됐다. 그러면서 이서연은 한정원에게 "1년만 버텨, 그러면 내가 다시 받아줄게"라는 무책임한 말을 남긴다.
한정원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이서연이 현재의 남편 윤지오(조이건 분)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질 만큼, 이서연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다. 하지만 이서연은 계속해서 한정원을 밀어낸다. 이때 노인지의 등장은 두 사람의 관계에 조금씩 다른 긴장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한정원과 노인지는 과거 결혼과 관련된 상처를 가지고 있다.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지만 외면받은 한정원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저 살아가기 위해 '기간제 배우자'로 살아가는 노인지다. 이러한 결혼에 대한 상처가 기반이 돼 두 사람의 '가짜 결혼'에는 '가짜'가 아닌 '진짜 감정'이 개입되며 점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몰래 한정원의 집에 설치된 카메라로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이서연은 자신만을 향하던 한정원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도 넘은 집착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 속에 또 다른 사건이 개입한다. 어느 호숫가에 피 묻은 트렁크가 떠오르고, 의문의 시신도 발견된다. 트렁크의 주인은 노인지. '가짜 결혼' 속에서 펼쳐지는 미묘한 감정싸움과 의문의 살인 사건이 얽히고설키면서 '트렁크'는 높은 흡입력으로 극에 빨려들게 만든다. 다만 이 다른 시간대의 두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그려지기에 극 초반 서사 전개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 호불호를 가르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극 초반부 등장하는 수위 높은 베드신 역시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관건이다. 해당 장면은 전부인 이서연에 대한 한정원의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와 관계에 대한 설명을 증폭시켜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도움 요소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트렁크'는 섬세한 인물들의 감정 묘사, 스릴러의 묘미를 살리는 촘촘한 서사 구조, 명확한 주제 의식에서는 확실한 매력을 가진 시리즈다. 특히 '결혼'이라는 소재를 두고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사고들이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갈등을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혼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채우게 된다.
배우들의 호연도 '트렁크'가 가진 강점이다. 공유와 서현진은 결핍이 있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끈다. 또한 히스테릭한 인물을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정윤하의 모습은 '트렁크'의 극적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사랑'이라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두고 펼쳐지는 기묘한 '결혼' 이야기를 다룬 '트렁크'다. 제각기 다른 과거와 목적을 가지고 결혼에 임하게 되는 극 중 인물들이 '가짜 결혼'과 '진짜 감정'에서 찾은 최종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의문의 살인 사건은 누가 범인이고, 피해자일까. '트렁크'를 열면, 판도라의 상자 같은 혼란의 이야기도 함께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