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사실 환상들의 역할이 크다.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며 현실을 버텨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2024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의 퍼포머로 공연한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첫 곡 '동거'를 부른 뒤 짚은 대목이기도 하다.
선우정아는 "신비한 곳에 3일 동안 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텔이지만, '같이 살자'는 느낌을 내고 싶어 '동거'를 첫 곡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이 은밀한 곳에서 선우정아는 좀 더 과감해졌다. '욕심' '시샘' 등 내달 18일 발매 예정인 정규 4집 '너머 [2. 화이트 셰이드(White Shade)]'의 더블 타이틀곡을 이날 모두 공개한 것이다.
특히 화룡점정은 '별사탕' 무대였다. 선우정아가 지난 7월 발매한 정규 4집 파트 1인 미니앨범 '너머 [1. 블랙 시머(Black Shimmer)]'의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폭발하는 별처럼 자유와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루한 세상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했는데 무엇보다 1980년대 영미팝에 대한 헌정이 담겼다.
모텔이란 설정은 비밀스러운 아지트 느낌을 풍긴다. 그곳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건, 실재하는 시간을 버텨내는 환상 같은 분위기를 빚어낸다. '고민중독' '내 이름 맑음'의 걸밴드 '큐더블유이알(QWER)'이 이렇게 관객과 가까이 하는 무대는 처음이라고 감탄한 것처럼, 은밀한 교감도 이 융복합 행사의 방점 중 하나다. 현대카드는 저작권 관련 이슈가 있는 일부 섹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섹션을 유튜브로 생중계 했는데, 현장을 찾지 못한 이들의 배려인 동시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응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 것으로 보인다.
창작뮤지컬 '레드북' 창작진·배우의 토크콘서트 역시 현실에서 풍성한 사유를 만드는 환상의 힘을 느끼게 했다.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 받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안나'라는 기념비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 서사'의 진전을 이룬 수작이다. 한정석 작가는 극에서 여성들을 돕는 여장 남성 '로렐라이' 역에 대해 "여성 인권이나 문제에 대해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듣고 변화하고 연대가 가능한 남성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퍼포먼스 아트 섹션에서 보여준 김성환 작가, 작곡가 겸 성악가 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의 협업도 환상을 자극했다. 이렇게 환상은 현실의 폐허를 넘어서는 낭만의 지층을 발굴한다.
아울러 지난 27~29일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은 한국판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SXSW) 명성도 공고히 했다. SXSW는 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음악·영화·게임 등 문화 콘텐츠와 IT 산업을 융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융복합 페스티벌 겸 컨퍼런스를 가리킨다.
런던베이글뮤지엄 료(RYO) 최고브랜드책임자(CBO), 뉴욕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 등 최근 다시 유행 조짐인 미식 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주인공들을 강연자로 섭외하는 등 선구안도 발휘했다. 최근 K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강연자로 내세우는 과감함도 돋보였다. 민 전 대표 세션을 중계한 유튜브 동시접속자수는 최고 3만5000명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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