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꿈' '남원의 애수' '회전의자' 등으로 1950∼60년대 인기를 누린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이 별세했다. 향년 89.
27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 가요계에 따르면, 김용만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935년 경기민요를 하던 국악인 김대근의 5남4녀 중 3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동생인 김용남 역시 대금 연주와 악기를 제작한 국악인 집안이었다.
이 노래의 성공에 힘입어 신신레코드 전속가수로 발탁됐다. 이후 '효녀 심청'·'청춘의 꿈'·'삼등 인생'·'생일 없는 소년'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우리 가락을 접목한 민요와 만요(漫謠) 등으로 점차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이 때문에 그는 무대에서 종종 '민요 가수' 혹은 '만요 가수'로 소개되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명동 부르스', '후라이 맘보' 등을 발표했다. 특히 가수 백야성과 콤비를 이뤄 그의 대표곡을 여럿 만드는 등 작곡가로도 활약했다.
'잘 있거라 부산항'을 비롯해 '항구의 영번지', '못난 내 청춘', '마도로스 도돔바' 같은 백야성의 노래가 모두 김용만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듀엣으로 '김군 백군'도 발표하기도 했다.
박 평론가는 "김용만은 항상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만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무대에 올랐다.
한 달 전에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김계홍 SBS미디어넷 전 대표가 있다. 빈소 서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특7호, 발인 29일 오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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