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K팝 같은 대중적인 음악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다. 국내 대중음악 평론가 중 다루는 음악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 평론가가 최근 펴낸 '인디 케이팝(K-POP) 명반 가이드북 - 한국 대중음악을 읽는 또 다른 시선'(안나푸르나 펴냄)은 그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다. 'K팝의 세계화 속에 공생하면서 그 가치를 점검할 필요가 있는 인디 음악들'의 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노래'(2008),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2009), 장기하와 얼굴들 '별일 없이 산다'(2009), 혁오 '20'(2014), 잔나비 '몽키호텔'(2016) 등 여기에 담긴 앨범 121장이 익숙하다면 환기를, 낯설다면 친밀감을 안겨줄 글쓰기 형식을 보여준다. K가 세계화의 만능으로 통하는 시대에 K속에 가려져 있던 음악을 K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처 보이지 않았던 스펙트럼까지 펼쳐보인다.
2008년 대학생 시절 블로그에 국내 음악을 리뷰하기 시작하면서 대중과 호흡해온 정 평론가는 2010년 웹진 '음악취향 Y' 필자로 처음 합류했다. 네이버 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문화·예술 큐레이션 웹진 인디포스트 수석에디터 등을 거쳤다. 최근 음악 비평 웹진 '청각의사유'를 열었다. 2022년부터 서울예술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대중음악과 재즈의 역사'를 강의 중이다. 다음은 최근 을지로에서 만난 정 평론가와 나눈 일문일답.
-책 제목에서 많은 고민이 느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이에요. 방향성에 동의했죠. 처음엔 K팝 의미가 두 트랙이었잖아요. 한국에서 나오는 대중 음악, 좀 더 협의(狹義)의 의미로 인기 아이돌 음악을 가리켰죠. 그런데 갈수록 한국의 아이돌 팝을 주로 일컫는 용어가 됐어요. 또는 아이돌 팝은 아니어도 주류에서 소비되는 한국의 가요를 K팝이라고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측면에선 한국의 대중음악이 아이돌 팝밖에 없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출판사 기획 관점의 시작인 것 같고요. '아이돌 팝 말고도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습니다'를 소개할 수 있는 타이틀이면 좋겠다는 제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인디 K팝'이라는 용어가 원래 없는 표현이지만, 독립적인 인디 가수와 주류 아이돌 팝도 사이에 있는 음악들을 다루면서 해외 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돌, 인디 이렇게 너무 이분화돼 있는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다양성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K팝은 이제 상업성, 회자되는 분위기가 인디와 상대도 안 될 정도의 규모예요. 반대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인디를 다루거나 평단이 인디를 다루는 시각은 또 한편으로는 시장성이나 상업성과 너무 괴리가 있다고 느껴지죠. 책에서 다룬 목록엔 '인디 명반'이라고 일컫는 앨범들도 많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인디, K팝 명반으로 구분돼 포함되기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음반들도 있죠. K팝, 인디 그 중간 지대에 있는 음반들을 다루려고 했어요."
-그런 시각과 포지션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리스트를 정하는 원칙은 무엇이었나요?
"첫 번째는 물론 당연히 음악이 좋아야 됐었는데, 그 음악과 아티스트가 아이돌, K팝과 관련이 있는 이슈가 있을까를 먼저 찾았어요. K팝 아티스트와 협업 또는 K팝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수민 씨처럼 작곡에 많이 참여하거나 한 케이스가 있으면 그런 것들을 먼저 언급해서 K팝 팬들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돌 팬과 연결고리가 없더라도 한국적인 요소가 이제 음악에 녹아 들어감으로써 해외에 알려진 케이스가 있으면 리스트에 넣기도 했고요. '인디'라는 제목을 붙였다보니, 독립성이라는 측면을 음악적인 속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대형 기획사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음악은 배제하고자 했어요. 스월비 같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아티스트도 포함돼 있는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닌 음반 자체를 통해서 더 주목을 받은 케이스라 포함시켰어요."
-포함된 음반의 시대 기준점과 분량은 어떻게 결정이 됐나요?
"처음엔 100장을 선정하려 했어요. 시작점은 제가 2012년으로 잡았어요. 미국에서 싸이 '강남 스타일' 신드롬이 있었던 게 2012년이고 빅뱅의 '얼라이브'가 한국어로 된 앨범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메인 차트 '빌보드 200'에 진입한 시기이기도 해요. 아이돌이 2세대에 진입하고 그 이후 세대로 넘어가면서 인디 음악가들과 협업도 많이 늘어난 시기죠. 그렇게 100장을 선정하는 과정 중에 출판사 쪽에서 이 100장의 앨범이 나오는데 영향을 준 앨범을 추가로 20장 정도 선정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120장이 됐어요.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일상다반사'를 스타트로 잡았는데, 이 앨범이 (당시 힘들다고 여겨지던) 홈레코딩이라 독립 제작의 상징성을 갖고 있기도 하고 2000년이라는 시점이 주는 시대적인 부분도 있었어요."
-연도별로 배분된 음반은 정량적인 것에 신경을 썼나요?
-알고리즘을 기반 삼은 각자 취향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시대라 큐레이션의 무의미해졌다는 분석도 나와요. 이런 시점에서 평론가님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형태의 책이 나온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언젠가는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텐데 그 속에서 사람이 하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의 선택에 대해 신뢰하거나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요. 제가 어렸을 때처럼 음악 잡지를 보거나, 1990~2000년대 활발했던 평론이 계속 대세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어떤 고민을 통해서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큐레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AI가 음악들을 모을 수는 있으나 거기에 어떤 의미부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디 K팝'이라는 용어를 붙여서 '우리가 이래서 이 리스트들을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된다'고 정리하는 것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정답이나 인기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게 아니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죠. 단순히 옵션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면 평론 자체도 그래서 의미가 있는 거겠네요.
"예전에는 평론이라는 사람들에게 어떤 길라잡이나 어떤 정답처럼 비춰졌던 측면이 있었죠. 근데 이제는 그런 시기는 아니에요. 평론가 이상으로 음악을 많이 디깅하는 분도 계시고, 각자의 정보력이나 지식으로 큐레이팅도 할 수 있고 비평도 할 수 있는 시기죠. 하지만 평론가가 다른 지점이 있다면, 다양한 음악들을 많이 접하고 그것에 대해서 동시대적으로 고민을 한다는 거예요. 특정 장르 전문가들이 많이 나오는 시기지만, 전통적인 평론가들은 장르 구분하지 않고 전체 작품들을 동등한 선상에 두고 고민을 하다 보니까 다른 시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론가님의 음악 자양분이 궁금합니다. 대중음악 평론가 중 음악을 듣는 범위가 가장 넓은 편이신 걸로 아는데요.
“어머님이 오르간하고 피아노를 전공하셨고요. 아버지는 음악을 하셨던 건 아닌데 집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시는 걸 녹음해서 저한테 들려주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팝송도 굉장히 많이 들으시고요. 근데 어머니, 아버지의 취향이 굉장히 달랐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한 분의 취향을 따라가기보다 두 분의 취향을 골고루 흡수를 하다 보니까 일찍부터 넓게 들었왔죠."
-처음에 파워블로거로 유명하셨죠?
-대학에서 독문어를 전공한 이유는 클래식음악 때문이었나요?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연기를 했었어요. 연극반 1년 선배가 조현철 배우님이에요. 연기를 직접 하는 것도 재밌지만 캐릭터, 대본 분석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때 독일 희곡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독일어과로 진학했죠. 대학 1학년 때는 독일어 연극반 활동도 했어요. 물론 음악을 좋아하는 지점도 독일어과를 선택하는 데 영향이 있었죠.
-석사에선 '트랜스-장르 비평' 연구를 하셨습니다.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지도 교수님이 언어 기호학을 전공하셨던 분이었어요. 그분이 문화 예술 분야의 여러 요소들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하고 틀로 분석하는 연구 이론을 가지고 계세요. 이분의 이론으로 음악을 분석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걸로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지금은 '비평 윤리'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기술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윤리적인 고민들도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데 동시대에 맞는 어떤 비평 윤리, 비평 주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책을 쓰신 다음에 '음악 글쓰기'에 대해 새롭게 정리가 된 측면이 있다면요.
"제가 평상시에 주로 다루는 음악들이 대중적이지는 않았어요. 미학적인 관점에서 정리를 하거나 남들에게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대중적이지 않은 언어나 문체를 사용한 지점이 있었죠. 이번 책을 쓰면서 출판사와 계속 얘기를 나눴던 게 '조금 더 쉽게'였어요. 그래서 주관적인 표현과 비평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들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습니다. 좀 더 편한 글 또는 좀 더 읽기에 담백한 글을 쓰려고 애쓰는 과정이 있었죠."
-마지막으로 음악 평론가의 글쓰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음악을 할 기회도 있었지만 전 플레이어를 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좋은 음악을 듣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 또는 가치를 느낄 수 있고 향유할 수 있어요. 근데 제가 만들거나 연주를 한다고 하면, 무수한 연습·고민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 시간은 일종의 제게 기회 비용이에요. 그 시간을 또 다른 좋은 음악을 듣는 데 쓰는 거죠. 그걸 혼자 즐기면 되는데 왜 글로 쓰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특정 음악의 가치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사람들이 잘 모를 때 그 음악을 공유하는 게 저의 목표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또는 제가 아니더라도 그런 역할들이 충분히 어디에선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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