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온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나무에 구멍이 수십개 뚫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예천군 유천면의 한 마을에서 400여 년이 된 당산나무가 고사 되는 일이 발생해 경찰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이 마을 출향인 31명을 대표한 A씨는 지난 2일 예천경찰서를 찾아 당산나무 느티나무에 약물을 주입해 고사시킨 혐의로 B씨를 고발 수사 의뢰했다.
이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는 녹음이 우거져야 할 여름임에도 잎이 모두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이 노거수는 수령 4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동네 위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삼신당’이라고 이름을 붙여 100년 넘게 동신제를 지내왔다. 마을을 지키는 신이 깃들었다는 의미로 ‘당산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A씨는 "작년 6월부터 새끼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라며 “누군가 고의로 농약을 뿌려 죽였다”고 말했다. 당산나무는 큰 어미나무와 상대적으로 작은 새끼나무 3그루로 이뤄져 있다.
실제 당산나무 곳곳에는 드릴 등을 이용해 뚫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37개나 발견됐다. 마을을 떠나 서울 등으로 떠난 출향민들은 범인이 이 구멍을 통해 제초제 등을 주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거목을 고사시킬 때 주로 쓰는 방식"이라며 "지난 2일 예천경찰서에 당산나무를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범인은 당산나무 바로 옆에 사는 60대 남성 B씨로 추정된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낙엽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다는 이유로 농약 성분의 제초제를 당산나무에 주입했다고 진술했다.
현재 이 나무 앞 제단에는 ‘그리운 당산나무’라고 쓰인 비석이 놓였다. 이 마을 출향민 80여명이 당산나무 고사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지난달 20일 세운 비석이다. 비석을 세운 날 출향민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당산제도 지냈다. 나무에 깃든 신의 노여움을 풀고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A씨는“출향인 80여 명은 400년동안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를 고사 시킨 일에 지금 분노로 들끓고 있다”라며“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법대로 처벌해 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B씨가 자신의 마당 위로 가지가 뻗어져 있는 당산나무의 새끼나무에 농약 성분을 집중적으로 주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어미나무와 새끼나무의 뿌리가 이어져 있는 탓에 어미나무마저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B씨가 주입한 농약 성분과 나무 고사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