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2023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으로 초청받아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연출은 김혜수 마동석 주연의 '굿바이 싱글'(2016)을 선보였던 김태곤 감독이 맡았다. 김태곤 감독은 8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된 소감에 대해 "여러 안 좋은 일이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탈출'의 주연 배우인 고(故) 이선균이 영화의 개봉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김태곤 감독은 "선균이 형도 그렇고 더 많은 관객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는 것을 바랐을 것 같더라"며 "마지막까지 잘 만들어서 관객분들께 보여드리는 게 형이 바라는 거라 생각해서 거기에 부합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부담을 느끼고 압박이 있을 때마다 제 편을 많이 들어줬던 사람"이라며 이선균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털어놨다.
'탈출'은 실험견이 풀려나며 공항대교 위해서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담아냈다. 칸 영화제보다 더욱 속도감이 느껴지는 서사와 실제와 같은 도로 위 연쇄 추돌, 공항대교 붕괴 등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김태곤 감독을 만나 '탈출'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및 작품의 비화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칸 영화제 이후 달라진 부분은.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줄 몰랐다. 당시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이고 나서 좋은 평가를 주신 분도 계시고 비판하신 분들도 계셨다. 지적해 주신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 더 개선하려 했다. 지루하게 느꼈던 호흡이 조정돼서 러닝타임은 당시보다 6분 정도 줄었다. 또 많은 분들이 감정 과잉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음악이 먼저 선행돼서 감정을 강요하거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걸 안 좋아하시더라. 음악의 톤을 수정했고 영화의 속도감이나 긴장감을 더 올릴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고쳐보자 해서 후반 작업이 길어졌다.
-여름 시장 개봉 소감은.
▶아시다시피 여러 안 좋은 일도 있어서 마음이 무겁다.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를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의무이자 목표이기도 했다. 처음엔 무거운 마음으로 어떻게 홍보를 할까 고민도 컸고 조심스러웠는데 선균이 형도 그렇고 더 많은 관객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는 것을 바라겠다 생각했을 것 같더라. 그래서 더 많이 홍보해서 많은 관객분들이 볼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 중이다.
-기존 작품들과 다른, 스케일이 큰 재난 영화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한 장르에 매료돼서 그 장르만 파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면 어떻게 하면 재밌게 전달할까 흥미가 생긴다. '탈출' 역시 이런 얘기가 참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어떤 장르를 해야겠다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더 재밌어 보일까 그런 고민을 했다.
-실험견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출발했나.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목포에서 서울까지 걸어오는 도보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때 혼자 국도를 걸어가다 진짜로 들개를 만났는데 체감으로는 20마리 정도였던 것 같다. 그 개들이 계속 어느 지점까지 쫓아왔는데 그때 갖고 있던 공포감이 인상적이었다. 일상적으로 봐온 개들이 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반려견이었을 텐데, 어쩌다 이 개들이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깊게 하면서 주제도 담으면 더 재밌는 얘길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배경이 공항대교인 이유는.
▶사고가 발생하고 사람들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 풀린 개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려면 고립된 장소가 필요했고, 규모가 있었으면 했다. 어디로 가는 대교이면 좋을까 생각했을 때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비롯된 여러 사연들도 있겠더라. 캐릭터도 더 풍부하게 풀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다 보니 공항대교라는 설정을 가져가게 됐다.
-실험견의 비주얼을 감정선이 느껴지는 얼굴로 디자인했는데.
▶개를 모델링할 때 공포스럽게도 보여야 하지만 다양한 감정이 느껴질 수 있는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도 중요한 캐릭터이고 이 개 역시도 피해자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생명체가 처음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후반부로 가서 이 개 역시도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과장되더라도 표정과 눈빛, 감정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박의 반려견 조디는 실험견과 대비되는 귀여운 반려견이었다. 대비는 의도한 것인지.
▶실험견들도 실제 개로 하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더라. 개들이 통제도 안 되고 원하는 속도도 나지 않았다. 어찌 됐든 CG로 구현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는데, 생명력 있는 실제 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극 중 나오는 캐릭터들 역시도 부부, 부녀, 자매 관계가 있는데 반려견과 견주를 통해 어떤 관계성을 보여줬으면 했다. 조박이 어떻게 보면 양아치처럼 나오는데 그런 부분을 상쇄시킬 수 있는 요소로 조디가 등장했으면 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니.
-정원 역으로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는.
▶'굿바이 싱글'이 당시 선균이 형 소속사에서 제작을 했었다. 그래서 대표님 통해 여러 번 같이 얘기를 나눴는데, 선균이 형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비롯해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하게 나왔는데 이런 재난 영화에는 나온 적이 없어서 새로울 것 같더라. 처음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셨지만 이 극 전체를 충분히 이끌어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관객들도 못 봤던 모습일 테고 재밌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훌륭하게 구심점을 잡고 혼자서 잘 이끌어나가시더라. 딸과의 관계에 있어서 감정 역시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이선균은 어떤 배우였나.
▶형은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이고 깐깐하신 분이시다. 그 깐깐함은 영화에 도움이 되는 깐깐함이라 생각한다. 뭐 하나 대충 찍자 이런 게 절대 없는 사람이었다. 소품과 동선 하나하나 테이크 역시도 본인이 힘들어도 '잘 나온 거 맞냐'고 재차 확인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내가 한 번 더 할게'라고 하는 배우였다. 저 역시도 이런 영화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 부담을 느끼고 압박이 있을 때마다 제 편을 많이 들어줬던 사람이다.
-'탈출'은 이선균의 유작으로도 소개되고 있다. 누군가의 유작이 됐다는 점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일인 만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잘 만들어서 관객분들께 보여드리는 게 형이 바라는 거라 생각해서 거기에 부합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다.
-주지훈 캐스팅은.
▶여러 작품을 통해 굉장히 멋있는 이미지로 구축이 됐었고 저 역시도 팬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을 안 하실 거라 생각했다. 김용화 감독님이 제작자이신데 '신과 함께'를 주지훈 배우와 함께 하셨어서기를 해보신다고 하더라. 시나리오를 보시고는 할 수 있다고 하셔서 혹시 캐릭터 이해를 잘 못하셨나 했다. '이 역할은 양아치에 가까운 역할'이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하실 수 있다고 하시더라. 헤어스타일도 '이런 거 어떠냐'며 카톡으로 제안도 해주시고 의상도 그랬다. 감사했다.
-주지훈의 불 뿜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원래는 CG로 하기로 했었는데 차력사가 하는 걸 보더니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고는 실제로 자기가 했다. 사람들이 놀라서 박수 쳐주고 그랬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서 열심히 하다 보니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주지훈의 코미디 연기 활약은.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은 죽어 나가는데 쟤는 왜 저러고 있나 생각할 수도 있어서 수위에 대한 걱정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캐릭터가 없는 건 훨씬 더 지루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위를 찾는다기보다 캐릭터로서 극복해 가야 하는 지점을 생각하며 '얘는 이래도 괜찮을 거야' '그냥 해도 괜찮아'라는 방향으로 갔었다. 무엇보다 조디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래도 쟤는 귀여워'라는 식의 캐릭터가 되길 원했고, 관객들도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했다.
-김수안은 '부산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수안이가 제일 잘하더라. 어쩔 수 없다, 수안이밖에 없구나 했다. 전 그 당시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부성애 이런 걸 잘 알지 못했는데 선균이 형은 자식도 있어서 (연기를 하며) 표현 방식을 달리하더라. 전형적인 아빠와 딸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캐릭터들을 구축했다.
-100중 추돌이 주요 장면 중 하나인데, 차량 사고 구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세트를 빌리긴 했지만, 차 속도를 내서 사고를 낼 만큼의 길이는 안 되더라. 광양에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는 주차장 같은 공터를 빌려서 실제 속도를 내서 실제로 차를 박으면서 찍었다. 배경만 CG고 실제 차들의 타격감을 위해 그렇게 연출했다. 여기서 가짜처럼 보이면 뒤에 나오는 개들은 더 가짜처럼 보이니 초반 실재감을 주기 위해 실제 차로 촬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계획을 세웠다.
-규모적으로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감독으로서 성취감을 느꼈던 부분도 있나.
▶세트를 짓고 완성된 걸 봤을 때 저도 모르게 벅차더라. 이런 걸 구현해 준 제작진, 스태프들도 너무 감사했고 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그 무대에 서니까 그런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이와 동시에 부담감도 들었고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텼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탈출'의 각본에 참여했던 박주석 작가와 제작사를 하나 만들었다. 오리지널로 창조해서 만드는 '더 웨이킹'이라는 제목의 OTT 시리즈물인데 거인이 갑자기 발현돼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이다. 현재 플랫폼은 100% 확정은 아니고 프로덕션 단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