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마저 설레는 '졸업'…거장의 멜로는 달랐다

입력 2024.06.08 07:01수정 2024.06.08 07:00
행간마저 설레는 '졸업'…거장의 멜로는 달랐다 [N초점]
tvN


행간마저 설레는 '졸업'…거장의 멜로는 달랐다 [N초점]
tvN


행간마저 설레는 '졸업'…거장의 멜로는 달랐다 [N초점]
tvN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졸업'의 멜로는 달라요."


tvN 토일드라마 '졸업'(극본 박경화 / 연출 안판석) 제작발표회 당시 주연배우 정려원 위하준은 자신들의 멜로가 여느 드라마와 다르다고 자부했다. 무려 24.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로 역대 tv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눈물의 여왕' 후속작이었음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려원은 "마지막 촬영 날 셀프로 인생작이라는 타이틀을 먼저 줘버렸다"고 말했을 정도다.

'졸업'은 스타 강사 서혜진(정려원 분)과 신입 강사로 나타난 발칙한 제자 이준호(위하준 분)의 설레는 미드나잇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로, '하얀거탑'(2007)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풍문으로 들었소'(2015)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의 안판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졸업'은 멜로 수작을 다수 남겼다는 호평을 받아온 안판석 감독이 또 한 번 더 선보이는 로맨스 드라마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배우의 연기와 케미가 매우 중요한 멜로가 주된 장르이지만, 배우들 역시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감독의 연출에 대한 '리스펙'을 드러냈듯, '졸업'은 안판석 감독이 찍은 인장이 큰 상징성을 지닌다.

'졸업'은 요즘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강한 일상성을 드러낸다. 안판석 감독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에서도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배경만으로도 멜로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독보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다. 요즘 시청자들이 판타지와 범죄 스릴러 등 장르에 따른 자극적인 전개와 내용, 더 빠르고 새로운 이야기를 선호하지만 안판석 감독은 평범한 일상과 보편성의 저력을 보여준 연출자이기도 하다.

.

'졸업' 역시도 8등급 꼴통에서 1등급으로, 명문대에 진학시켰던 제자와의 사제지간 멜로가 큰 줄기이지만, 학원가의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진진한 소재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듯 다음 전개가 더욱 궁금해질 만큼 풍성한 재미를 보여준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학교 국어 선생인 표상섭(김송일 분)이 공교육의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자 격렬하게 대립하는 서혜진의 모습부터, 새로운 학교의 학생을 모으기 위해 백발마녀로 불리는 라이벌 최선국어 원장 최형선(서정연 분)과 맞붙게 되는 예측 불가 경쟁까지 학원가의 서사는 흥미롭게 진행됐다.

최형선의 방해로 서혜진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이준호와의 사제출격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려던 찰나, 최선국어에 다녔던 희원고 전교 1등 이시우(차강윤 분)가 서혜진의 국어 수업에 감명받아 친구들까지 데려오는 통쾌한 전개까지 몰입도를 높였다. 그 과정에서 사제출격 프로젝트 실패의 책임을 물어 서혜진을 좌천시켰던 원장 김현탁(김종태 분)과 갑을 관계가 역전되는 서사 또한 대치동 학원가의 살벌한 생존 경쟁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현탁으로 인해 경쟁 학원인 최선국어 부원장 자리를 수락하려 했던 서혜진이었으나, 이시우가 선생으로서의 초심과 열정을 일깨워주자 학원 강사의 사명을 다시 다지게 된 과정은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뤄낸 서사였다.

서혜진 이준호의 멜로 또한 학원가의 치열한 이야기에서 전개된다. 서혜진은 이준호가 대기업을 퇴사하고 자신과 같은 학원 강사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하자 이를 반대하지만 결국 받아들였고, 이준호를 위한 비밀 수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서로에게 이성적으로 스며들었다. 최형선의 방해로 준비했던 대형 무료 강의에서 단 한 명의 학생만 두고 수업을 해야 하는 굴욕적인 위기와 원장 김현탁에게도 내쳐졌던 상처 속에서도 이준호에게 의지했고, 이준호를 가르쳤던 녹록지 않았던 자신의 대학 시절에도 많은 순간 그에게 기대고 있음을 깨닫고 마침내 마음을 열었다.

학원가의 이야기와 둘의 멜로가 촘촘하게 얽히면서 '졸업'은 시청자들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로 다가온다. 안판석 감독의 힘과 진가는 마치 실제 일상을 관찰하듯 긴 호흡으로 장면을 다루는 디테일한 연출에서 나온다. 시청자의 감정을 빠르게 소강시키지 않는 연출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빠르고 극적인 전개를 선호하는 드라마 시장에서 극 중 인물들의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조차 버리지 않고 활용되는 현실적인 디테일이 시청자와의 일상과 연결되는 공감대로 작용한다.

안판석 감독의 이 같은 연출력으로 인해 배우들 역시 사실에 가까운 리얼한 연기를 펼친다. 정려원이 실제와 같은 노련한 14년 차 학원 강사로 보이는 이유는 빠르지 않은 전개의 긴 장면에서 진짜 강사처럼 호흡해야 하는 연기를 펼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뚝뚝 끊어지는 현란한 장면 전환의 기술이 연기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간 다 읽었죠?"라는 이준호의 고백이 담긴 장면 또한 실제 행간을 표현한 배우들의 호흡을 연출로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이 뽑는 명장면이 되기도 했다.

매 작품 풍자 요소를 놓치지 않았듯, 대치동 학원가에 대한 풍자도 재미 포인트다. 한국 사회의 입시전쟁의 궁극적인 목표가 계층 사다리를 타고 상류층을 향해 높이 오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학원가의 극성 엄마들의 모습은 물론, 선생인 최형선조차 "네가 가게 될 대학, 네가 갖게 될 직업, 네가 소개팅에서 만날 여자의 외모까지도 학교 시험 주관식 문제 하나에 달릴 수 있다"며 "여전히 이 사회에 계급을 뒤엎을 방법이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계급에 대해 서슴없이 말한다. 대기업 사원 타이틀에 집착하는 이준호 부모의 모습이나, "의대는 가보자"라는 대사, 신혼집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어도 대치동만큼은 안면몰수하고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준호 친구의 대화에서도 '강남 불패'의 굳건한 신뢰가 느껴진다.

'졸업'은 현재 8회까지 방송돼 반환점을 돌았다. 서혜진과 이준호의 본격적인 쌍방 로맨스가 시작된 가운데, 그 다음의 전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와 서사까지 촘촘하게 쌓아온 만큼, 더 보여줄 이야기가 많기에 다음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감상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작품은 호평이 아깝지 않다. 단연 멜로 장인, 거장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안판석 감독이 종국에는 어떤 작품을 남길지 더욱 주목된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