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90을 바라보는 이동세 씨(87)와 송화자 씨(84)는 지난 4월 16일 전북 경찰청 앞에서 펼침막을 뒤로한 채 "늦둥이 막내딸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며 "이제 딸을 기다릴 기력조차 없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여기에 나왔다"고 했다.
'이윤희를 아시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은 이윤희 씨(1978년생)로 18년 전 오늘, 2006년 6월 6일 새벽 전북 전주의 자취방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동세-송화자 씨 부부가 2024년 6월 6일까지 6576일간 한시도 잊은 적 없다는 딸은 송혜희 양 실종 사건(1999년 2월 13일 실종)과 더불어 대표적인 장기 미제 실종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차이점은 두 사람 모두 살해 사건에 연관됐을 경우 송혜희 양 공소시효는 완성된 반면 이윤희 양 공소시효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살인 공소시효의 경우 15년에서 2007년 12월 21일 25년으로 늘어났지만 그해 12월 20일 이전 범죄는 종전 공소시효(15년)를 적용키로 함에 따라 송혜희 양 공소시효는 2014년 2월 13일 자로 만료됐다.
반면 이윤희 양은 살인 공소시효가 2015년 7월 31일 폐지됨에 따라 만약 이 씨가 살해당했다면 범인은 영원히 처벌을 면하지 못하게 됐다.
◇ 종강 '쫑파티' 마친 뒤 6일 새벽 귀가…'112' '성추행' 단어 검색이 마지막
이윤희 씨는 2006년 6월 6일 새벽 4시 21분 자취방에서 자신의 컴퓨터 전원을 끈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행적이 묘연하다.
당시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생으로 졸업까지 한 한기만을 남겨두고 있던 이 씨는 6월 5일 오후 학교 인근 호프집에서 교수, 학과 학생들과 종강 파티를 한 뒤 6일 새벽 2시 30분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의 원룸으로 귀가했다.
당시 과 동기였던 A 씨(1979년생)가 이 씨를 원룸까지 배웅했으며 원룸에 들어간 이 씨는 6일 새벽 2시 58분부터 1시간 20여분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중 3분여가량 '112' '성추행'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많은 이들은 '112' '성추행' 검색어를 통해 이윤희 씨가 성추행과 관련해 호소할, 무엇이 있지 않았냐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 마지막 흔적 이틀 뒤 친구들이 실종신고…어지럽던 원룸 청소로 '결정적 물증' 날려버려
이윤희 씨 과 동기들은 6월 7일, 모범생 이 씨가 결강하자 동기 A 씨로 하여금 원룸을 찾아보도록 했다.
원룸을 찾았던 A 씨는 '개가 짖을 뿐 별다른 인기척이 없더라'며 돌아왔다.
이튿날인 6월 8일에도 이 씨가 학교에 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동기들은 금암동 원룸을 찾아간 뒤 열린 창문 틈을 통해 방가운데 신발이 있는 등 어지럽혀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지만 이 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 이 씨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집에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냐, 곧 내려가겠다'는 대답을 듣자 경찰에 연락, 강제로 문을 열고 원룸에 들어갔다.
동기들은 경찰에 실종신고(가출인 신고)를 하는 한편 곧 내려올 이 씨 부모님 보기가 뭐하다면 원룸 청소를 실시했다.
이 씨의 언니도 '동생이 연락 두절이다'는 말에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와 베란다에서 발견한 담배꽁초를 혹시나 부모가 볼까 싶어 쓰레기통에 담아 버렸다.
경찰이 이들에게 '절대 손대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이윤희 씨 실종과 관련된 지문 혹은 타인의 DNA 등 결정적 물증 확보 기회를 날려 버렸다.
◇ 1남 3녀 늦둥이 딸…수의사 꿈 이루겠다며 이화여대 거쳐 전북대 수의학과
이윤희 씨는 이동세-송화자 씨의 1남 3녀 중 늦둥이 막내딸로 부모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이화여대에서 미술과 통계학을 복수전공했던 이 씨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며 2003년 전북대 수의학과로 편입, 졸업을 단 한 학기 남겨놓고 있었다.
늦둥이 딸을 잃어버린 부모는 그때부터 딸을 찾기 위해 혼자 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며, 때로는 경찰 등 수사당국에 하소연하면서 지금까지 버텨 왔지만 그 노력에 대한 답을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 엉덩이를 만졌다, 실종 4일 뒤 누군가 이메일 검색, 평소보다 2.7배 증가한 동물사체 소각
경찰은 경찰대로 가족과 친구들은 그들대로 이윤희 씨 실종과 관련돼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것들을 확보했다.
이윤희 씨는 실종 당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떤 남학생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 어떤 아저씨가 따라와 내 엉덩이를 만졌다' '이것도 강제추행이냐'고 물었다.
또 이 씨가 실종된 지 4일째가 지난 6월 10일 저녁 서울 여의도 모 호텔에서 이윤희 씨 계정으로 음악 사이트에 접속하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경찰은 호텔 CCTV를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이 씨는 물론이고 이 씨와 관련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씨 실종 직후 전북대 수의학과의 동물사체 소각량이 평소(40kg)보다 2.75배나 늘어난 110kg을 소각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 동기 남학생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이윤희 씨 실종과 관련해 가족들은 쫑파티 뒤 이 씨를 원룸까지 바래다준 A 씨에 대해 지금까지도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 A 씨가 평소 이 씨에게 집착했다는 주변 증언 △ 실종 당일 원룸 청소 때 쓰레기봉투에 뭔가를 가득 담아 집 앞이 아닌 제법 떨어진 곳에 버린 점 △ A 씨 수첩에 이윤희 씨 관련 사항이 유난히 많은 점 등을 들었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는 등 A 씨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다했지만 뚜렷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며 난감해했다.
◇ 막내딸 꼭 보고 죽겠다는 부모, 사례금 1억원 내걸기까지
이 씨 부모는 "꼭 막내딸을 보고 죽고 싶다"며 2008년 재산을 정리해 실종과 관련해 결정적 제보를 하는 이에게 '사례금 1억원'을 내걸기까지 했다.
자식이 실종된 뒤 강원도 평창으로 들어가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부모는 딸이 마지막으로 있던 전주를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난 4월 16일 "막내딸이 살아있다면 올해 47살이 된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 딸을 찾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왔다"며 "내 딸 윤희를 찾아달라"고 읍소했다.
전북경찰청은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현실적으로 획기적인 수사의 단서를 찾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 가능성을 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겠다"며 부모의 요구에 답한 뒤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제보가 들어왔으면 한다"고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