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에도 안 팔리던 '이것'…뉴진스 덕분에 10만원?!

입력 2024.05.12 06:00수정 2024.05.12 13:44
1000원에도 안 팔리던 '이것'…뉴진스 덕분에 10만원?!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판매하는 중고 카메라. ⓒNews1


1000원에도 안 팔리던 '이것'…뉴진스 덕분에 10만원?!
서울시가 세운상가 일대 재생사업 대외발표를 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장사동 세운전자상가에는 인적이 드물어 적막감만 가득하다. 세운상가는 1968년 건립된 국내 최초 주상복합타운으로 한때 전자사업의 메카로 불렸지만 현재는 일대 상권이 침체된 상태다. 2017.3.2/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1000원에도 안 팔리던 '이것'…뉴진스 덕분에 10만원?!
300만 화소 디카 화면. 유튜브 캡처


1000원에도 안 팔리던 '이것'…뉴진스 덕분에 10만원?!
'뉴진스'가 '디토(Ditto)'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로 자가촬영을 한 모습. 유튜브 캡처


[편집자주]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해명과 반박이 거듭되면서 본질은 사라지고 왜곡된 파편만 남게 됩니다. [리뷰1]은 이슈의 핵심을 한눈에 파악하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담겠습니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뭐 찾아요? 카메라 사러 왔어요?"

지난 9일 좁은 복도에 빼곡히 들어선 재고 박스들 사이로 한 상인이 익숙한 듯 길을 가리켰다. 손님들이 길을 헤매는 미로 같은 이곳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의 생활 전자제품 상가다. 복도를 따라서 가게들이 줄을 이었지만 대부분 비어 있거나 불이 꺼져 있었다. 영업 중인 가게마저 사방에 쌓인 물건들에 파묻혀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웠다. 지나가며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나지막이 들리면 그제야 안에 주인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32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김 모 씨(69)의 카메라 가게는 복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람 말소리가 끊이지 않고 오가는 가게다. 3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김 씨의 가게는 카메라로 가득 찼다. 카드 리더기 놓을 곳도 마땅치 않아 필요할 때마다 구석에서 꺼내 코드를 연결했다. 김 씨네 앞집 영상편집 가게의 주인장은 이런 풍경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부러운 눈치였다.

지난 2022년 말 아이돌 뉴진스가 '디토(Ditto)' 뮤직비디오에 디지털캠코더가 등장한 게 빈티지 카메라 유행 확산에 불을 지폈다. 이 뮤직비디오 뒷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에서 빈티지 디카로 셀카를 찍는 모습도 공개됐다. MZ세대 사이에서 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생산된 지 20~30년 된 빈티지 디카 가격이 10만 원 안팎으로 뛰었다. 그리고 오른 가격에도 여전히 찾는 사람이 있었다.

◇ "300만 화소 정도는 돼야죠"

지루할 틈 없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젊게는 20대 학생들, 많게는 백발의 사진작가도 가게를 찾아와 진열된 카메라를 유심히 살폈다.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카메라는 단연 가성비가 좋으면서 화소가 낮은 디카였다. 기본적으로 300만 화소는 돼야 빈티지 감성이 난다고 생각하는 손님이 많아서다. 이날 남자 친구와 함께 매장을 찾은 조 모 씨(26·여)는 "일반 카메라도 좋은데 보정하지 않아도 흐리게 나오는 게 예쁜 거 같아서 사고 싶은 것 같다"며 "요즘 저렴하게 알리바바(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화소 낮은 장난감 카메라 찾아서 쓰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매장을 방문한 권혜민 씨(23·여)도 이미 집에 디카가 하나 있지만 기계마다 색감이 달라서 더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 계속 디카로 찍은 사진들을 보다 보니까 직접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오면 인터넷보다는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왔다"고 했다. 또 권 씨는 "뉴진스 뮤비에 나오는 캠코더랑 영상 분위기나 그런 감성을 찍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학생들도 카메라를 고르며 가격을 물었다. 사용 설명서도 들어있지 않은 중고라 외국인들은 사용에 애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가게를 찾는 학생들에게는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진열대에서 붉은색 디카를 고른 미국 학생 A 씨에게 김 씨는 계산기로 가격을 알렸다. 학생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가격은 15만원. 동그래진 학생의 두 눈을 본 김 씨는 급하게 구글 번역기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대신 배터리랑 충전기도 같이 주는 거예요"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 구매를 결심한 A 씨는 카드를 건넸다. 그러자 김 씨는 다시 한번 카메라 사용법을 눈앞에서 선보였다. "자 봐봐, 이렇게 꾹 눌러야 해. 여기 누르면 몇장 찍었는지 숫자, 넘버가 보이지?" 쉬운 작동법 때문에 크게 막히는 구간은 없었다. 다만 SD카드 리더기를 아이폰에 꽂고 찍은 사진을 어떻게 해야 바로 핸드폰 화면으로 볼 수 있는지 설명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다.

김 씨는 외국 학생들에게는 특히 신경을 더 쓰게 된다고 했다. 적은 돈도 아닌데 금방 고장이 나면 학생들이 속상해한다는 것이다. "외국 학생은 자기네 나라에는 이런 디카가 없으니까 더 신기해하고 다 사 가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자세히 알려줘요. 충전하는 것부터 사진 바로 연결해서 휴대전화로 어떻게 보는지 이런 것들. 안 그러면 가져가봤자 또 고물이 되는 거니까 아깝잖아요. 그래서 손님들한테 작동 잘되는지 테스트해야 해요."

◇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매입한 '고물'…이제는 우리만 살아남았죠"

1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촬영 수단이 되면서 아무도 디지털카메라를 찾지 않게 되자 김 씨는 공매 처분된 전국의 중고 카메라 2000여 대를 매입했다. 당시에 사 놓은 디카와 필름 카메라는 대부분 헐값에 팔렸지만 그때부터 이어진 인연들로 여전히 그의 가게에서 중고 카메라 거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생산 중단된 제품을 오랫동안 판매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그냥 사 놨어요. 다 버릴 것들을 왜 샀냐고 욕도 많이 먹었지. 당시에 재고는 많은데 사람들이 안 사니까 그냥 바닥에 놓고 하나에 1000원씩 팔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는 우리만 살아남은 거지."

본격적으로 김 씨네 디카가 팔리기 시작한 건 약 5년 전부터라고 설명했다. 레트로(복고) 열풍이 불면서 필름 카메라 수요가 높아지자 비싸진 필름 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다시 디카로 눈을 돌린 시기였다. 약 2년 전만 해도 한국을 찾은 중국 유학생들이 인당 10대씩은 사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중국 사이트에 되파는 용도였다. 당시 디카 가격은 현재 평균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 3만~4만 원꼴이었다.

그러다 뉴진스의 노래 '디토'가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MZ세대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디카를 장만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부모님이랑 여기 와서 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같이 와서 사기도 한다"며 "토요일은 지방에서 고등학생이 오기도 해요. 지방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재고가 거의 없다 보니 따로 다양한 종류를 잘 파는 곳이 없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디카지만 현재 평균 가격은 8만~15만 원대까지 제품 성능에 따라 다양하다.


김 씨에게 이 유행이 얼마나 유지될 것 같냐고 묻자 미소만 띤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관심이 계속 지속됐으면 좋겠지만 생산이 없다면 중고 제품들은 언젠가 수명을 다할 테니 끝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 처분하기 어려워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카메라들을 거둔 김 씨에게 '유행'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카메라 파는 게 별거 없어 보여도 재미있어요. 뒤에 또 손님 들어오네, 문 좀 열어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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