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박찬욱 감독이 시리즈로 안방을 찾아왔다.
'동조자'는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후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자, BBC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글로벌 시리즈다. 박찬욱 감독은 작품의 공동 쇼러너(co-showrunner)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제작, 각본, 연출까지 진두지휘하며 극을 이끌었다. 미국과 베트남,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경계에 선 주인공을 통해 그려낸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한 '동조자'는 '거장'의 연출력을 안방에서 새삼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쿠팡플레이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1화씩 공개 중인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퓰리처상 수상으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탄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지난 15일 베일을 벗은 1화에서는 사이공 함락 4개월 전인 1975년, CIA 클로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신임을 받는 남베트남 비밀경찰과 북베트남 공산주의 스파이를 오가는 이중간첩 '대위'(호아 쉬안데 분)의 모습이 담겼다. 대위는 치과의사인 절친 만(듀이 응우옌 분)으로부터 공산당의 지령을 전달받아 남베트남 비밀경찰의 명단을 빼돌리려 했다. 대위는 우편함에 명단을 찍은 필름을 넣어뒀으나, 전달책이 남베트남 경찰에 잡히면서 위기가 드리워졌다.
이후 패전이 다가오고 대위는 베트남에 남길 원하지만, 만은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장군(토안 레 분)을 감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와 그의 가족을 따라가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에 대위는 또 다른 절친이자 반공주의자인 본(프레드 응우옌 칸 분)과 그의 아내, 아이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로 향하지만, 활주로에서의 베트콩의 무차별적 습격으로 본의 아내와 아이가 죽음을 맞이했다.
22일 공개된 2화에서는 만과 함께 극적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뒤 장군 가족의 현지 정착을 도우면서 공산주의 스파이 활동을 이어가는 대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장군은 베트남 난민들 사이 스파이로 의심되는 이가 있다며 두더지를 색출하라 명령하고, 대위에게 또 한 번 더 위기가 찾아온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소피아 모리(산드라 오 분)와 만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동조자'는 초반 익숙지 않은 낯선 배우들과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나면 '아이러니'를 다루고 표현한 이야기와 연출의 힘이 비로소 보이는 작품이다. 베트남계 호주 배우 호아 쉬안데가 연기한 주인공 대위는 파란 눈의 베트남 청년으로, 이중 스파이를 연기하며 드러나는 불안과 내면의 갈등을 흡인력 있게 표현, 시청자들을 작품 속으로 이끈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유창한 베트남어와 영어 실력까지 갖춘 배우를 섭외하기까지 녹록지 않았을 제작진의 고군분투가 짐작되는 캐스팅이었다.
'동조자'에서 가장 반가운 배우는 단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다. 로다주는 CIA 요원과 교수, 국회의원, 영화감독까지 각기 다른 역할을 1인 4역으로 해내는 등 변화무쌍한 변신을 선보였다. 박찬욱 감독은 네 명의 인물들이 결국 미국이란 기관과 시스템, 자본주의를 뜻하는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캐스팅을 제안했다는 비화를 들려준 바 있다. 비주얼부터 연기까지 한 작품에서 4번의 극적 변신을 시도한 로다주의 열연도 관전 포인트다.
베트남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겪었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시청자들도 공감할 지점들이 있다. 대위는 베트남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데다, 미국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미국과 베트남 그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아가 충돌, 딜레마를 겪는 모습이다. 북베트남의 지령을 따르며 충성심을 보여주지만, 절친인 만조차 미국 문화에 동화돼 있는 대위를 향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베트남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었다"며 우리 문제이기도 한 국제·사회적인 복합적 갈등에 대해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신냉전이라는 말도 있고, 결코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은 또 얼마나 격렬한가"라고 되물으며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내전 배후에 강대국이 있는 역사와 현실 등은 우리에겐 숨을 쉬듯 공기 같이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동조자'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짚었다.
박찬욱 감독은 총 7편 중 3편까지만 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