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아기 낳기 전 마지막으로 평양냉면 먹으러 왔는데 1시간째 서 있어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을지면옥 앞에서 만난 이 모 씨(35·남)는 만삭 임신부인 아내와 함께 냉면을 먹으러 왔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 따라 평양냉면에 입문하게 됐다는 아내는 만삭 상태로 1시간 넘게 기다렸음에도 지친 내색 없이 냉면을 먹을 생각에 들뜬다며 웃어 보였다.
'냉면 명가' 을지면옥이 2년 만에 돌아왔다. 1985년 을지로 세운지구에서 장사를 시작해 맛과 전통을 가진 노포로 언론에 자주 소개됐다. 37년간 영업을 이어오던 을지면옥은 지난 2022년 6월 말 세운지구 재개발로 인해 문을 닫은 뒤 이날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오전 11시 30분 영업 재개를 앞두고 매장 안팎은 분주하게 흘러갔다. 주방에 있는 직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매장 밖에 나와 몰려드는 손님들을 향해 부지런히 질서 정리에도 나섰다.
2030 세대부터 지팡이를 짚고 온 중장년층까지 전 연령대가 각각의 추억을 가지고 이곳 을지면옥을 찾았다. 을지면옥을 찾은 손님들은 간판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며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이렇게 몰린 인파가 신기한 듯 "다시 영업한다는데 오늘이구나", "어머 사람 정말 많아" 말하며 사진을 찍어갔다.
첫 번째로 줄을 선 30대 여성 이 모 씨는 "9시부터 와서 기다렸다"며 "냉면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오늘 시간 맞춰서 이렇게 찾았는데 뭐 먹을지 지금 열심히 메뉴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영업 마지막 날에도 을지면옥을 찾았다는 이 씨는 "옛날 노포 감성이 그립긴 한데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생겨서 반가울 따름"이라 덧붙였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방에서 만난 사람들도 을지면옥을 찾기도 했다.
광진구에 거주한다는 조 모 씨는 "단체방에서 5명 정도 시간 맞는다 해서 이렇게 모였다"며 "여기 있는 메뉴들은 하나씩 다 시켜서 소주랑 함께 먹으려고 어제부터 쫄쫄 굶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기다리느라 다리가 아플까 봐 조립식 의자와 양산도 챙겨왔다며 자랑스레 기자에게 보여줬다.
11시가 넘어 직원들은 최종 준비를 마치고 모여서 서로 힘내보자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하듯 밖에 있던 손님들도 함께 박수를 치고 을지면옥의 재영업을 기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냉면 명가답게 화환들이 수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직원들 역시 바쁘고 정신없어 보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단골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는 등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냉면 가격은 1만 5000원으로 2년 전에 비해 2000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평양냉면 평균 가격이 1만 6000원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직원들은 첫 번째 손님들을 향해 "너무 오래 기다리셨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악수하고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70대 중반 남성 2명은 "40년 전 처음 문 열었을 때쯤에도 왔던 곳인데 그때도 우리 둘이 함께 왔다"며 "옛날 젊었을 적 생각이 엄청나게 난다"고 말했다.
김 모 씨(70·남)도 "30년 전 존경하는 선생님이 평양에서 피난 오신 분이었는데 그때 그 선생과 같이 을지면옥에서 냉면을 접하고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됐다"며 "지금 선생님은 돌아가셔서 저 혼자 먹으러 왔는데 옛날 생각이 나고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