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 내려진 벌은 고작..

입력 2024.04.21 06:47수정 2024.04.21 11:35
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 내려진 벌은 고작..
과속운전한 승용차가 환자 이송 중인 구급차를 들이받아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충남 아산소방서 제공)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자동차들은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구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구급차가 교차로 절반을 지날 즈음, 날카로운 바람이 서행하는 차들 사이로 벼락같이 지나갔다. 이어 굉음과 함께 구급차 뒷바퀴가 지면 위로 떠올랐다. 구급차는 붕 뜬 채, 한바퀴 돌고 난 뒤 바닥에 떨어졌다.

지난해 8월 21일 오후 10시 52분께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1290 교차로에서 A 씨(75)는 52년을 함께 한 아내를 한마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나보냈다.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A 씨는 이날 갑작스레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초기 암 진단을 받은 상태여서 걱정이 된 부부는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는 A씨를 이송침대에 고정시키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아내가 곁을 지켰다.

집을 떠난 지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B 씨(41)가 운전하던 BMW가 구급차 오른쪽 뒷바퀴를 들이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당시 B 씨의 차 속도가 시속 134㎞였다고 분석했다. 해당 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60㎞다.

사고 위치에 앉아 있던 A 씨 아내에게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좌석에는 안전벨트가 있었지만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는 구급차가 한바퀴 도는 사이 차량 내부 이곳저곳에 부딪히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A 씨는 이송침대에 고정돼 충격을 줄일 수 있었지만 어깨와 다리 근육 등이 파열됐고, 윗 치아가 모두 부서졌다. A 씨 부부와 함께 차에 탑승해 있던 구급대원도 다리가 골절됐고, 구급차 운전자 등 2명도 부상을 입었다.

A 씨는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수술대에 올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녹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한 B 씨와 달리 신호를 위반한 구급차의 사고 책임을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B 씨의 명백한 과실이 확인되면서 과속으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내리고 B 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검찰은 B 씨의 책임을 더 무겁게 물었다. 이미 과속운전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 전력이 있는 B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는 법정최고형인 금고 5년을 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법원도 B씨를 엄하게 꾸짖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단독 정은영 부장판사는 "의무보험 조차 가입하지 않은 자동차를 운전해 제한 속도의 2배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다 사고를 일으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해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사고 8개월 만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덜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고로 골절상을 입었던 구급대원은 7개월이 지나서야 업무에 복귀했다. 구급차와 장비 등은 폐차 또는 폐기됐다.

퇴직 후 아산에 정착해 여생을 즐기던 A 씨는 아내를 잃고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군 장교 출신으로 건강에 자신있던 A 씨지만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만큼 걷기도 불편해졌다. 황망하게 '엄마'를 잃은 두 자녀도 불쑥 떠오르는 '엄마' 생각에 목이 멘다.

A 씨는 "평화롭고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고 비통해했다.

B 씨의 사과를 바라기도 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B 씨는 앞선 결심공판에서 "피해자의 연락처를 몰라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연락처를 건네받은 뒤에도 피해자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A 씨는 이제 B 씨의 감형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B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도 항소장을 제출해 B씨에 대한 항소심이 대전고법에서 열리게 됐다.

B 씨는 "피고인은 항소해 자기 주장을 하며 감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재범할 위험성도 높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피고인이 감형없이 엄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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