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여기서만 수십 년 살았는데 벚꽃축제 때 벚꽃이 안 핀 건 처음 보네. 지구가 이상하긴 해."
제주 대표 봄축제인 제17회 '전농로 왕벚꽃 축제'가 개막한 22일, 낮 최고기온이 20도를 웃돌았으나 1㎞가 넘는 벚꽃길은 아직 '겨울 풍경'이다. 축제를 맞아 통제된 수백m 도로와 길가를 따라 걸린 청사초롱이 무색할 정도였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슈퍼마켓에서 만난 주민들은 벚꽃은커녕 분홍빛조차 띠지 않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 모 씨(70)는 "개화 예보만 믿고 축제를 올해만 좀 빨리한다 싶었는데 결국 꽃 없이 축제를 치르게 됐다"며 "지금 나무 상태를 보니 다음 주나 돼야 (벚꽃이) 피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축제를 맞아 '반짝 특수'를 기대했던 지역 상인들도 울상이다.
전농로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강 모 씨는 "축제 때면 사람이 물밀듯 오니까 매상이 엄청나게 뛰는데 올해는 벚꽃이 안 피다 보니 사람이 올는지 모르겠다"며 "축제할 때만 푸드트럭을 운영하러 오는 젊은 상인들도 있는데 그쪽이 더 울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밤부터 주말까진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축제가 끝나는 오는 24일까지도 꽃이 만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제주에선 평균기온이 올라 평년보다 3일 빠른 이달 21일쯤 벚꽃이 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일조시간이 부족해 아직 꽃이 피지 않고 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1~17일 제주지역의 일조시간은 84.9시간으로서 작년 같은 기간 137.6시간보다 52시간이나 적었다. 또 올 2월 강수량이 '역대 1위'로 많은 등 이틀에 한 번꼴로 내린 비도 벚꽃 개화를 늦추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주인공'인 벚꽃은 없지만 이날 축제 현장에선 나들이 나온 도민과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푸드트럭에서 간식을 사 먹고, 벚꽃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과 유치원생들도 축제 개막을 맞아 소풍을 나왔다.
제주시 관계자는 "23일부터 열릴 애월읍 장전리 왕벚꽃 축제장도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아 상황이 비슷하다"며 "그러나 축제는 예정대로 진행하는 만큼, 많은 도민과 관광객이 찾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