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지난해 10월 23일 밤 0시 46분께, 광주광역시 북구청 교차로에서 부직포 재질의 쇼핑백을 손에 쥔 A씨(45)가 택시를 찾고 있었다. 마침 B씨(70)의 택시가 눈에 띄었다. B씨는 손주들에게 줄 용돈을 벌기 위해 늦은 시간에도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를 잡아 탄 A씨는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며 목적지를 인천공항으로 지정했다.
2시간을 달린 택시가 아산시 염치읍을 지날 때 쯤, A씨는 "소변이 마렵다"고 했다. B씨는 택시를 도로변에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용변을 보고 돌아온 A씨는 강도로 돌변했다. A씨는 택시 뒷자리에 앉자마자 운전석에 앉아 있는 B씨의 목을 졸랐다. B씨가 저항하며 택시 밖으로 도망가자 쫓아가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목을 졸랐다. 폭행은 30분간 계속됐다. B씨가 의식을 잃자 마트 쇼핑백을 머리에 씌우고 미리 구매한 박스테이프로 목을 감았다.
B씨는 새벽이 밝아오는 아침 6시께 도로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사이 A씨는 B씨의 택시를 몰아 인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미리 마련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손에는 B씨의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패턴을 그리자 잠금이 해제됐다. 택시에 탑승했을 때 B씨가 입력하는 패턴을 어깨너머로 보고 익혀 둔 터였다. A씨는 손쉽게 B씨의 계좌에서 2차례에 걸쳐 500만 원씩, 모두 10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고 돈을 인출했다. 일부는 태국행 비행기표를 사고, 일부는 태국 바트로 환전해 태국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B씨를 살해한 용의자로 A씨를 특정해 뒤를 쫓았다. 이미 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신속하게 인터폴을 통해 태국경찰에 공조를 요청했다. A씨가 공항을 빠져나가면 검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국경찰과 긴밀한 협조로 A씨는 범행 11시간 만에 태국 공항에서 붙잡혔다.
이튿 날, 국내로 강제 송환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태국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지난해 5월, 태국 국적의 여자친구와 혼인 신고한 A씨는 11월 16일 태국에서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신부측에서 700만 원의 지참금을 요구했지만 형편이 안됐다. 결혼식 비용도, 타고 갈 비행기 티켓을 살 돈도 없었다.
결국 범행 보름 전부터 휴대전화로 '완전범죄', '차량 납치 강도', '고속도로 차량 강도' 등을 검색하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이자 아빠, 할아버지를 허망하게 잃은 유족들은 A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간청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일순간에 피해자를 잃어 평생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피고인을 오랜 기간 격리해서 재발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앞서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은 범행의 잔인성 등을 감안하면 더욱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며 항소했고, A씨도 판결 확정 하루를 남겨두고 항소장을 제출해 2심 재판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