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승에 "아내 죽여달라" 하고 보험금 8억 타먹은 주지스님의 최후

입력 2024.02.12 05:00수정 2024.02.12 10:10
행자승에 "아내 죽여달라" 하고 보험금 8억 타먹은 주지스님의 최후
ⓒ News1 DB


행자승에 "아내 죽여달라" 하고 보험금 8억 타먹은 주지스님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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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우리나라 헌법 13조 1절엔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선 두 번 이상 심리·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상의 원칙으로 이를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이라고 한다. 일사부재리는 형사사건에만 효력을 미치며 민사사건은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인이 살인 혐의로 기소돼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죄를 확정받았다면 이후 완벽한 물증 혹은 증인이 나타나도 살인 혐의로는 더 이상 기소할 수도, 재판정에 세울 수 없다.

범죄사건이 일정 기간 지나면 형벌권 자체가 소멸되는 '공소시효'도 어찌 보면 비슷한 개념이다. 살인죄의 경우는 2015년 7월 31일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폐지돼 범인이 죽지 않는 한 100년이 흘러도 재판정에 세울 수 있다.

◇ 일사부재리에 막혀 살인 교사는 죄 묻지 못하지만 엄벌…檢 "피해자의 원혼 덕에 기소"

11년 전 오늘인 2013년 2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성용 판사는 내연녀와 짜고 부인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다음 부인이 살해당한 뒤 보험금 8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모 사찰 주지승 박모씨(당시 50세)에게 징역 7년 5월, 내연녀 김모씨(42) 씨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보험사기로는 엄한 벌을 내린 까닭에 대해 이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보험사들을 속인 것과 그 결과 발생(아내 살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 박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다루진 않았지만 무관치 않음을 암시했다.

앞서 검찰도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의 원혼이 있어 기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박씨에 대해 보험사기 법정형 상한(10년 이하 징역)보다 높은 15년형을 구형했다.

◇ 여자 문제로 갈등 빚던 아내, 행자승 시켜 살해한 주지 스님…파기 환송심 끝에 무죄

결혼을 허용하는 대처승 종단 소속으로 경기도 동두천의 한 사찰 주지였던 박씨는 2003년 10월 자신의 여자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아내 조모씨(당시 36세)를 자신 밑에 있던 행자승 김모씨(당시 49세)에게 '죽이라'고 사주했다.

이에 앞서 박씨는 2003년 3월, 내연녀 김씨로 하여금 아내 행세를 하게 한 뒤 아내 이름으로 보험사 3곳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살인을 저지른 행자승 김씨는 '주지스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살인교사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고용하고 "아내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1심은 특수절도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부인을 살해한 행자승에게 적개심을 나타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유죄로 판단, 징역 15년형을 내렸다.

반면 대법원은 "사주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 무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며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이에 박씨는 파기환송심 끝에 무죄로 풀려나 2005년 5월에서 7월 사이 아내 명의의 보험금 8억원을 받아 챙겼다.

행자승 김씨는 살인혐의로 징역 15년형을 확정받았다.

◇ 2012년 1월 보험사기 혐의 수사 끝에 흑막 벗겨져…안심하던 스님, 해외서 귀국하다 체포돼

완벽했던 박씨의 범행은 2012년 1월 고액 보험금 관련 서류를 재조사하던 보험회사가 '무엇인가 이상하다'며 보험사기 혐의로 박씨를 고발하면서 들통났다.

경찰은 내연녀 김씨가 박씨의 아내인 것처럼 보험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을 확인, 김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박씨가 자녀와 함께 2006년 3월27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사실을 파악, 박씨의 여권을 말소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박씨는 2012년 9월 3일 다리골절 치료를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다 체포돼 구속기소 됐다.

아내의 원한이 조금이나마 갚아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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