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신디 로퍼, 다이애나 로스, 티나 터너, 폴 사이먼, 빌리 조엘, 케니 로저스, 윌리 넬슨, 휴이 루이스 등 당대를 풍미한 팝 거물 뮤지션 40여명이 하룻밤 사이에 녹음한 이 대곡(大曲)은 음악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었다.
지난달 말 넷플릭스 공개 전 폐막한 세계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제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음악 다큐는 계속해서 더 아파가는 세계에 대해 노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가 끝난 1985년 1월28일 밤. 녹음 장소는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녹음실인 A&M 스튜디오다.
'USA 포 아프리카(for Africa)'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프로젝트의 녹음실 앞엔 이런 문구가 걸려 있었다. '문 앞에 자존심은 두고 오세요.'(Check your ego at the door). 하지만 이 말로 내로라하는 뮤지션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긴장감을 완전히 없애긴 힘들었다. 1인칭의 내면으로 흐르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영감은 애초부터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더가 '위 아 더 월드'에 스와힐리어를 넣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런 아티스트의 예민함은 영감의 알리바이다.
'USA 포 아프리카'는 1984년 아일랜드 뮤지션 밥 겔도프가 U2의 보노, 스팅, 조지 마이클 등과 함께 에티오피아 대기근을 위해 노래한 프로젝트 '밴드 에이드'를 만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가수 출신 정치가인 해리 벨라폰테는 "흑인이 흑인을 돕는 사례는 드물다"며 음악계 마당발인 리치에게 아프리카를 돕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건넸다.
리치가 가수들을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자존심이 센 뮤지션들이 단번에 단합하기는 쉽지 않았다. "유치원에 처음 간날"에 빗대진 당시 초반 어수선한 분위기는 그 자리에 있던 겔도프의 연설이 다잡았다. 아프리카 기근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짚은 그의 차분한 얘기에 뮤지션들은 개인 감정에 요동치는 걸 최대한 자제했다. 겔도프는 "가운데 구멍 뚫린 플라스틱 조각(카세트테이프) 하나가 한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리치는 반장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AMA' 진행을 맡는 동시에 상도 휩쓴 그는 당일 밤을 즐기는 대신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당했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뮤지션들의 녹음을 도왔다.
시각 장애를 가진 찰스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니, 역시 시각장애가 있는 원더가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 대목은 감동이 화음을 빚어낸 장면이다. 이런 작은 기적들이 이어진 밤에 대해 로스는 눈시울을 붉히며 리치에게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결국 '위 아 더 월드'는 대성공을 거두며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 그래미를 석권했다. 모금액도 수천만달러가 넘었다.
뮤지션들의 선의와 노래의 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증표가 됐다. 리치와 함께 '위 아 더 월드'의 작사·작곡을 주도한 잭슨의 선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는 그 증거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던 잭슨이 허밍으로 작곡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덤이다. 다큐 속에서 독립된 공간에서 솔로 기타 연주를 바랐던 프린스까지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끝까지 합류하지 않은 프린스의 솔로 부분은 루이스가 대신 불렀다.
'위 아 더 월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의를 위해 톱가수들이 뭉친 프로젝트가 잇따라 탄생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매 당시 '한국판 위 아 더 월드'로 불렸던 '하나되어'(1999)가 대표적이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외환 위기로 인한 실업자들을 돕기 위해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나우 앤 뉴(Now N New)'에 실린 곡이다. 김정민, 엄정화, 조성모, 이승환, 신승훈, 이선희, 핑클, 박지윤, 김건모, 이승철 등 당대 톱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당시 아이돌 라이벌로 통한 'H.O.T'와 '젝스키스'도 함께 했다.
최근 '선한 영향력'을 내세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K팝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 가능할까. 최근 수상을 하든 못 하든 후보에 오른 톱 가수들이 모두 시상식을 즐긴 '제 66회 그래미 어워즈'를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바쁜 스케줄 탓에 톱 K팝 그룹들이 모이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걸 유일하게 가능하게 해주는 '그래미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같은 귄위 있는 K팝 시상식도 현재는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라 단합을 쉽게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언젠가 K팝계에도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같은 가슴 찡한 전설적인 비화가 내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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