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곡 '스탠딩 넥스트 투 유(Standing Next to You)'를 비롯해 앨범에 수록된 열한 개 트랙을 모두 영어로 채운 이 앨범은 영미권 팝시장을 적확하게 겨냥하다.
홀로 콘서트 세 시간을 채울 수 있는 팝스타가 되고 싶은 정국, 북미 팝 시장에 확실하게 안착하고 싶은 하이브(HYBE), K팝이 전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장르가 됐음에도 'K팝의 위기론'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않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도전이 섞인 음반이다.
방탄소년단 내 정국의 별명인 '황금 막내'에서 모티브를 따와 '황금빛'을 내세우는 이번 앨범은 사자성어인 '금석위개(金石爲開)'와도 접점을 이룬다. 쇠와 금을 뚫는다는 뜻으로, 굳은 돌도 마음먹기에 따라 통한다는 말.
굳은 벽이 높은 영미권 팝시장이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뚫을 수도 있다는 게 정국·하이브·방 의장의 의지로 보인다. K팝 아티스트에게 첫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안긴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버터' 등 방탄소년단 역시 버블검 팝(주로 10대들을 타깃으로 한 가벼운 대중음악 장르)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앨범 단위에선 자신들의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전에 솔로 앨범을 낸 RM, 지민, 슈가(어거스트 디), 뷔 등 방탄소년단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국이 일일이 곡을 골라 담은 '골든' 역시 자신의 것을 내세우지만 그 방향성이 영미권 팝 시장과 명확히 맞물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골든'은 좋은 팝 앨범이다.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 매체 NME는 '골든'에 대해 "상업적 성공을 위한 임무를 정확하게 달성한다. 대중적인 열 곡의 노래로 정국의 다양한 예술성,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거부할 수 없는 팝 매력을 포착한다"고 들었다.
미국 스타 DJ 겸 프로듀서 디플로가 속한 프로젝트 일렉트로닉 힙합 그룹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가 프로듀싱하고 피처링까지 한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 영국 팝스타 에드 시런(Ed Sheeran)과 미국 프로듀서 블레이크 슬랫킨(Blake Slatkin)이 곡 작업에 참여한 '예스 오어 노(Yes or No)', 프랑스 출신 DJ 겸 프로듀서 DJ 스네이크가 프로듀싱과 피처링에 참여한 '플리즈 돈트 체인지(Please Don't Change)(feat. DJ Snake)' 등이 실렸다.
또 또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션 멘데스(Shawn Mendes)가 곡 작업에 힘을 보탠 '헤이트 유(Hate You)', 미국 프로듀서 데이비드 스튜어트(David Stewart)가 프로듀싱한 '투 새드 투 댄스(Too Sad to Dance)'와 '샷 글래스 오브 티어스(Shot Glass of Tears)' 등도 포함됐다.
아울러 미국 프로듀서 블러드팝(BloodPop)과 스튜어트가 프로듀싱하고 미국 래퍼 잭 할로우가 피처링한 '3D', 미국 래퍼 라토가 피처링한 '세븐' 등 선공개곡까지 이번 음반엔 총 11곡이 수록됐다. '3D'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5위, '세븐'은 같은 차트에서 1위를 찍었다.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정국의 그루비한 보컬이 돋보이는 레트로 펑크(Retro funk) 장르 곡이다. 올여름을 강타한 메가 히트송 '세븐'의 프로듀서 앤드튜 와트와 서킷이 정국을 위해 다시 의기투합해 타이틀곡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특히 그래미 어워즈 수상자인 와트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18년 만에 발매한 음반 '해크니 다이아몬즈(Hackney Diamonds)' 프로듀서로 나서 매끈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이, 장르를 막론하고 러브콜 1순위의 핫한 프로듀서다.
무엇보다 영미권 팝스타 계보를 잇겠다고 선언하는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세븐'과 '3D'는 각각 캐나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팝 그룹 '엔싱크' 출신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연상케 한다.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80년대 미국 팝 신에서 프린스, 마이클 잭슨이 선보인 펑크(funk)에 대한 복고풍의 현대적인 해석이다. 정국이 방탄소년단 못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는 흐름을 보면서 '테이크댓' 출신 로비 윌리엄스, '원디렉션' 출신 해리 스타일스의 이름을 거명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사운드 질감이 풍부한 '스탠딩 넥스트 투 유'에 대한 평가가 좋다. 박준우 음악평론가(블럭(Bluc))(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는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긴 시간 알앤비, 팝 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품고 있다"면서 "더불어 가장 안정적이고 익숙하면서도 화려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잘하기 쉽지 않은 그것을 120% 이상으로 구현해냈다"고 들었다.
또 "보컬과 퍼포먼스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곡과 뮤직비디오 모두 인상적이며, 그 안에는 K팝도 있고 북미 음악 시장에서 남성 솔로로서 가져야 할 미덕도 갖추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정국이라는 음악가가 얼마나 좋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국은 아시아인 남성 가수로서는 가닿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옴 파탈' 면모로도 사랑 받고 있다. 음악을 소비하는 층을 좀 더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세븐'과 '3D'의 가사는 K팝 아이돌의 음악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가사가 섹시하다. 다만 특히 노골적인 내용이 있는 부분은 정국이 아닌 피처링 가수가 맡아 아슬아슬함은 유지했다. 사실 영미 팝엔 '세븐'과 '3D'를 능가하는 가사를 지닌 곡들이 많다. 팝 시장에서 대중음악은 성적인 호소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정국은 이런 부분을 과하지 않게, 매끈하게 소화하면서 메인 스트림 팝스타로서 입지를 굳혔다.
조혜림 프리즘(PRIZM) 음악콘텐츠 기획자(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BTS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발표된 황금 막내 정국의 '골든'은 BTS를 이루고 있는 음악적 편린이 아닌 그 누구보다 엽렵하게 정국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앨범"이라면서 "K팝 앨범으로는 전무후무한 최상급 해외 프로듀서들과 아티스트들의 참여했는데, 이것은 현재의 정국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정국이 이들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빛낼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실질적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특히 '3D', '세븐' '스탠딩 넥스트 투 유'의 펑키함 뿐만 아니라 BTS 데뷔 때부터 주목받아온 독보적인 감성과 깔끔한 보컬이 돋보이는 '헤이트 유'는 해리 스타일스가 원디렉션이 아닌 솔로로 첫 발을 디디며 발표한 감성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정규 1집 '해리 스타일스'가 떠올라 정국의 다음 앨범이 더욱 기대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박도아 K팝 칼럼니스트도 "앞선 '세븐'과 '3D'가 저스틴 비버를 떠오르게 했다면,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마이클 잭슨이 떠오르는 창법과 안무였다"면서 "정말로 '팝의 황제' 자리를 넘보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여기엔 마니아 시장에서 출발해 슈퍼팬이 이끌었던 케이팝 팬덤 시장을 벗어나, 라이트 팬, 즉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음악 소비자들을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K팝은 여전히 북미 시장에서 메인 장르는 아니기는 하다. 일례로 방탄소년단 다른 멤버들인 지민·슈가(어거스트 디)·뷔(V)의 각각 솔로 앨범인 '페이스'·'디-데이'·'레이오버'가 모두 '빌보드 200' 2위에 올랐다. 이번 정국의 '골든'도 18일 '빌보드 200'에서 2위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RM(김남준)의 '인디고'가 3위, 제이홉의 '잭 인 더 박스'가 6위를 찍었다. 솔로 앨범이 아닌 솔로 싱글만 발매한 진을 제외한 다른 멤버 여섯 명 모두 톱10에 들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팀으로서 여섯 개의 앨범을 '빌보드 200' 정상에 올렸다. 물론 톱10 진입 자체도 대단한 성과지만 1위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정국의 '골든'이 호성적에도 스위프트의 앨범 '1989(테일러스 버전(Taylor's Version))'에 밀려 2위로 예측되는 이유다. 다만 정국의 이번 2위 예상 성적의 총점은 약 20만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스위프트 같은 거물급이 아니었으면 충분히 1위를 차지하고 남았을 점수다. 대진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빌보드 200' 1위라는 상징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쉽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판매량인 셈이다. 방탄소년단에게 '21세기 비틀스'(비틀스와 방탄소년단은 영어 축약 표기가 같다)라는 수식을 준 '비틀스'의 나라 영국은 유독 방탄소년단이 인기인 나라인데 정국의 '골든'은 최근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에서 3위를 차지하며 K팝 솔로 가수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이미 전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피파이의 각종 글로벌 차트 정상을 장악 중이다.
내년 2월 열리는 '제66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 발표(현지시간 10일 진행)에서 K팝이 하나도 지명되지 못했는데, 이 시상식 선정 기준 기간에 발매되지 않았던 '골든'(선공개곡 '세븐'은 이번에 출품이 됐었다)이 다음 시상식에선 노미네이트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일고 있다.
박도아 칼럼니스트는 "라이트팬의 확장은 시장 규모를 키우고, 한국 아티스트들이 정말로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로 올라서게 하는 핵심 요소인데, 이는 K팝 아티스트나 K팝 제작자들에겐 딜레마일 수 있다. K팝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면서, 또한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라서 상충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서구 음악 시장에서, 아시아계 아티스트가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특수성을 띤 일이고, 그래서 마니아 시장과 슈퍼팬이 나올 수 있었다. 만일 K팝이 기존 주류 서양 음악 시장과 차별점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K팝 시장이 가능했을까. 슈퍼팬을 겨냥하지 않는 건, K팝의 동력을 포기한다는 의미인데, 과연 K팝이 그럴 수 있는 탄탄한 시장 실체를 가졌는지, 아니면 또 어떤 한계를 보게 될지는 정국의 솔로 활동 행보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정국의 향후 솔로 활동에 대한 전망은 밝다. 일찌감치 개인 음악 창작 작업을 해온 방탄소년단 래퍼 라인 RM·슈가·제이홉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솔로 활동 결심을 해왔다는 그는 이제 향후 팀의 완전체 재개 때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감이 묵직한 가수가 됐다.
조혜림 기획자는 "이번이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보이는 안전한 데뷔 단계라면 정국의 2집은 그가 보다 더 욕망하고 원하고, 무엇보다 더욱 즐길 수 있는 앨범을 발표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하게 된다"면서 "팝스타로 거듭난 '정국'이란 두 글자가 남성 솔로 팝스타로서 더욱 화려하고 강렬하게 빛날 것이란 걸 예고하는 이 앨범은 정국이 팝 신에서 얼마나 더 큰 존재감을 선보일지 촉망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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