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갤럭시 쓰는 여성이 진국이죠." "아이폰 쓰는 남성과 사귀고 싶어요."
최근 젊은 층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불붙은 논쟁이 있습니다. 휴대전화 기기 브랜드를 보면 그 사용자의 성격과 소비 습관 등을 짐작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를 쓰는 여성은 검소하고 '플렉스'(재력 과시)를 나타내는 SNS 유행에 덜 민감해 '진국'이라는 식입니다. 반면 애플 아이폰을 소유한 남성은 자상하고 교우관계가 활발하다는 논리이지요.
웃으며 가볍게 넘기는 분이 있겠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논쟁입니다. 이성 교제를 하거나 '썸'을 탈 때 특정 핸드폰을 사용할 경우 마음이 식거나 사귐을 다시 고려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과연 근거 있는 얘기일까요?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젠더(사회적 성별) 갈등으로 비화해 선입관과 성별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연령에 따라 선호 휴대전화 브랜드가 뚜렷하게 구분된 것은 '수치'로 확인되긴 합니다. 한국 갤럽이 지난 7월 발표한 '2023 스마트폰 사용률&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갤럭시 사용자는 69%, 아이폰 사용자는 23%입니다.
모든 세대에서 갤럭시 휴대전화 이용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지만, 1020은 예외입니다. 국내 18~29세 휴대전화 이용자의 65%가 아이폰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별로는 1020 여성 중 71%가, 남성 중 60%가 아이폰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SKT 등 이동통신 3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새로 출시된 아이폰15시리즈는 구매 고객 10명 중 8명이 2030이었습니다. 통신사별로 조금 차이는 있었지만, 구매 성별의 성비도 반반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쟁점은 이 같은 이용 현황만으로 개인 또는 집단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가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기 브랜드를 특정 성별 및 세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확정할 경우 사회 갈등과 선입견을 조장하기 쉽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아이폰과 갤럭시를 번갈아 가며 휴대전화를 사용 중이라는 직장인 손모씨(27)는 "남자지만 휴대전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며 "SNS는 특정 핸드폰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단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하는 건데, 이를 성별 및 휴대전화 종류와 연결하는 것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갤럭시를 사용한다는 직장인 권모씨(29)는 "일부 갤럭시 기종은 기깃값만 200만원 이상인데 비용만 따지면 아이폰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갤럭시 폰을 사용하면 구식이고 검소하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애플 등 팬덤(열성조직) 선호도가 높은 상품은 구매자 사이에 파노플리 효과(특정 상품을 구매하면서 자신과 해당 상품 소비자 집단을 동일시하는 현상)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집단 내 결속을 다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타 집단에 대한 배척과 차별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늘며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단순 휴대전화일 뿐인데…"
아이폰 사용 집단에서 '여성'이라는 성별을 콕 집어 허영, 사치 등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하는 것이 '프레임(틀) 씌우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종의 '여성혐오'처럼 느껴진다는 비판입니다. 휴대전화 기종에 따라 여성의 소비 성향 및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평가'처럼 느껴져 불쾌하다는 건데요. 우리 사회의 여러 혐오 중 하나로 '여성 평가'가 지목되는 상황입니다.
2019년 담화인지언어학회에서 발표한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 논문은 2014년부터 5년간 국내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 속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 "비하와 차별의 의미가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외모 등 어떤 속성을 가진 집단을 타자화·일반화"해 '평가'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대학생 김모씨(23)는 "갤럭시를 쓰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날 유행을 잘 모르고 돈을 아끼는 여자로만 볼까 봐 기분이 나쁘다"며 "친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이젠 '아이폰을 써야 할 때가 온 거 같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프레임이 불편한 것은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브랜드 외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는데 단순히 브랜드만으로 자신의 성향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학생 김모씨(21)는 "통신기술(IT) 기기 유튜버의 추천과 중고 판매 가격 등을 고려해 아이폰을 구매했다"며 "휴대전화일 뿐인데 이걸로 나의 '인싸력'(주류가 되는 능력을 의미하는 신조어) 등이 평가될 것을 생각하면 당혹스럽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