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통합'과 '중도확장'을 동시에 꾀하는 모습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로 냉랭한 민심이 확인되자 전통적 지지기반을 다시 결집하는 한편, 참모들을 민생 현장으로 보내 청년층과 중도층의 지지를 추동한다는 구상이다.
2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역대 대통령 처음으로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1년5개월 만에 재회했다. 4박6일 간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해 곧바로 달려간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추도식에 참석한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언론 카메라는 두 전·현직 대통령이 함께 묘소를 참배하고 악수하는 장면에 포커스를 맞췄다.
윤 대통령은 이튿날인 27일에는 경북 안동에서 지역 유림(儒林)들을 만나 집안 10대조 종조부인 명재 윤증이 임금에게 관직을 여덟 번이나 제안받았지만 '안동의 남인 유림들과 탕평 발탁해 주지 않으면 관직에 나아가지 않겠다'고 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고 탕평을 언급한 것은 '보수 대통합'의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진보층과 수도권은 물론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지율까지 위태로워지자 '통합론'을 꺼냈다는 시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TK 지역에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9%, 부정 평가는 43%로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했다.
지난 조사에 비해 긍정 평가가 4%포인트(p) 상승해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권의 핵심 지역 기반인 TK 지지율이 2주 연속 과반에 미치지 못한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부산·울산·경남(PK)는 긍정 42%, 부정 47%로 비판 여론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여권 관계자는 현 정부의 당정 요직이 이명박 정부(MB) 인사들로 채워졌던 점을 짚으면서 "박근혜계는 정반대편에 있었는데 사실 (박근혜계는) 보수 진영에서 MB계 다음으로 큰 세력"이라며 "대통합의 메시지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중도 확장'에도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은 보궐선거 패배 후 연일 '반성'과 '민생'을 언급했고,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용산 참모들을 민생 현장으로 보내 목소리를 청취하게 하는 등 몸을 낮췄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탕평'을 언급한 날,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한 징계 해제를 당 지도부에 건의한 점도 수도권과 중도·청년층을 겨냥한 '통합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해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혁신위가 1호 안건으로 '대사면'을 꺼낸 것에 대해 "윤 대통령과 혁신위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집토끼(보수층)를 다잡고, 중도확장 전략을 구사하는 순서"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 묶어 둠으로써 '보수 분열'을 막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많다. 엄 소장은 "비공식적으로 이 전 대표의 탈당 명분을 줄여서 신당 창당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효과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행보에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식은 윤 대통령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행사이고, (안동에서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고 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