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1호 귀순 배우 김혜영이 탈북 과정과 이혼, 사업 실패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1일 오전 방송된 KBS 1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는 김혜영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김혜영은 박원숙의 팬이라고 밝히며 "저는 한국에 와서 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보고 거기서 부잣집 사모님 역으로 나오시지 않았나, 그때 처음 봤다"라며 "제가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졸업했는데 늘 롤모델이 선생님이었고, 뵙고 싶었다, 그리고 김혜자 선배님 손자 결혼식 때 봤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영은 결혼 얘기를 묻는 질문에 "세 번 다녀왔다"고 답했다. 이어 "북한에서 25년 살고, 한국에서 25년 살았는데 북에서는 남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고, 키스만 한 번 해도 결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 와서 남자를 만났는데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저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제가 너무 잘나갈 때 눈코 뜰 새 없이 다닐 때였는데 꽃봉오리 예술단을 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만났다, 연극 '여로'를 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관객이었고, 제 팬이라고 했는데 당시 같이 연극을 하던 故박주아 선생님 조카의 친구였던 거다"라며 "남편이 성형외과 의사였는데, 춘천에 병원을 차리고 한 달에 한두 번 볼까 말까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고 저는 '왜?' 이랬다, 처음 이별이어서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박원숙은 "한국에 와서 몇 년 만에 결혼한 거냐"고 물었고, 김혜영은 "2002년도에 했다, 한국에 1998년도에 왔으니 4년 만에 결혼한 거다"라며 "그리고 헤어지고 죽을 만큼 힘들어서 누가 잘해주면 금방 푹 빠지더라, 그런데 두 번째는 2년 만에 (헤어졌다), 애가 있었지만"이라고 말했다.
김혜영은 "그래서 애가 일찍 철이 들었다. 애 앞에서는 안 보여주려고 해도 보였는지 '엄마, 복이 들어와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다섯 살에 말한 거다"라며 "내가 (이혼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없고, 너무 허망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김혜영은 "그동안 식당도 두 번이나 차려봤다, 처음에는 극장식 식당이라고 북한 예술단 출신이 공연을 해서, 처음엔 정말 잘 됐고 일본에서도 오고, 막 왔는데 그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고 갑자기 나가라는 거다, 결국엔 그냥 나왔다"라며 "그리고 서초동에 한 번 더 차렸다. 고모가 제주도에 사는데 삼치를 지원해준다 해서 했는데 손님이 많았는데 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거다. 제가 너무 몰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입은 잘 챙겼냐'는 질문에 김혜영은 "제가 다행히 수입을 아빠한테 다 드렸는데, 아빠가 고맙게도 재테크를 잘 하셔서, 아빠 덕에 경제적인 건 힘들지 않았다"라며 "세 번째까지 (이혼하고) 그러니 통장을 하나 주시더라, 그때 앞에선 말 못핬는데 차에 가서 통곡했다, 자식으로서 이런 걸로 불효를 했단 거에"라고 털어놨다.
한국에서 25년간 많은 일을 겪은 그는 "'개그콘서트' 같이 한 (김)지선언니가 저한테 '북에서 압록강도 건너서 왔는데 어떻게 여기서 끝내냐, 뭐가 두려운 게 있냐,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고 말하더라"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날 김혜영은 1998년도에 탈북한 과정을 밝히며 "그때 드라마처럼 나왔다, 총에 맞을 뻔했다"라며 "우리 가족이 총 다섯 명이었는데, 나온 날이 압록강이 언 1월15일이었다, 꽁꽁 얼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부모님이 밤에 안 주무시고 계속 얘기를 하셨고, 다음날 압록강 근처에 있는 양강도에 친척 결혼식에 가자고 하더라"며 "가족끼리 처음 여행 가는 거라 좋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가는 도중에 걸린 거다, 경찰이 '지금 어디 가냐'고 하고 아빠가 친척 결혼식에 간다고 하니까 경찰이 '따라간다'고 했다, 그 친척이 할머니였는데, 집 들어가자마자 아빠가 결혼식 왔는데 경찰이 못 믿는다고 말하셨고, 할머니가 바로 알아채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결혼식을 집에서 다 한다. 딸들 시집 보낼 때 이불을 장만하는데, 이불이 다 있어서 그걸 보여주는데도 경찰이 안 믿는 거다"라며 "그래서 당시 북한은 100달러만 있어도 3개월 사는데, 그때 200달러인가, 300달러를 주니까 (갔다)"라고 했다.
김혜영은 "다음 날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데 100m 구간마다 경비대가 무기를 차고 있어서 아빠가 생각하다가 우리 세 딸에게 중국 옷을 입힌 뒤, 아빠가 경비대장과 말하는 동안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건너라고 하더라, 거의 다 가는데 경비대장이 돌아보고 '저기 애들 뭐냐'하고 호루라기 불고 난리 나고 총을 쏴서 빵빵 소리도 나고, 동생들은 주저앉는데 제가 잡고 정신없이 뛰었다"라며 "그때 아빠가 중국 애들이 놀다가 가는 것 같더라고 하고, 다행히 경비대장이 총을 멈췄다, 아빠가 다 계산을 하신 거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국은 건너갔는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지나가는데 '너네 북에서 넘어온 애들이지' 하면서 위험하다고 집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집에 할머니와 손주가 있는데 할아버지가 바로 나가고 할머니도 옷을 챙겨 입더니 밖에서 문을 잠갔다"라며 "그래서 탈출을 하려고 했고, 담장이 높아서 동생들한테 나 밟고 가라고 해서 넘어갔고, 나도 죽을 힘을 다해서 겨우 넘어가 할머니 가는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가서 기다리는데, 1시간50분을 더 기다렸는데 부모님이 오셔서 만났다"라고 전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됐냐고 묻자, "부모님과 만나서 바로 한국에 갈 줄 알았는데 기사가 졸음 운전으로 앞차를 박은 거다, 산이 외길이었는데 다행히 돌에 부딪혀서 차가 멈췄다"라며 "사고를 냈으니 경찰을 불러야 하는데 중국이라 공안이 오면 큰일 난다, 공안이 와서 처리하고 갈 때까지 차 밑에서 숨어 있었는데 너무 추웠고 다섯이 꼭 안고 체온을 나누면서 있었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 잘 마무리 돼서 중국 내 한국대사관을 갔는데 안 받아주는 거다, 북에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중국에선 북한 사람이 보이면 신고하라고 한 상황이었다"라며 "다행히 아빠가 지인을 통해 빈 아파트가 있어서 들어갔는데 시멘트 바닥이라 군대 담요를 깔고 7개월을 살았고, 그렇게 1년 8개월을 돌아 다니면서 살았다, 그때 우리 가족이 다 찢어져야 사는 상황도 있었는데 그러면 영영 못 만날 거라 생각해서 아빠가 '죽더라도 같이 죽자'고 해서 같이 있었고, 다행이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온 이후 상황에 대해 "북한에서 연극영화과 다니면서 영화 2~3세편 찍고 북한에서도 탈북으로 알려진 상황이라 위험할까 봐 처음에 방송을 거절했는데 결국 제가 가장이 된 상황이라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라며 "그러고 방송 3사에 다 나갔는데 '1호 귀순 배우'가 되어서 '김혜영이 누구냐'가 됐고, 광고 제의까지 들어왔다"라고 했다.
이어 "25년 전에 1억을 받았다, 당시 북한에서 최고 화폐 단위가 100원이었는데, 1억이 상상이 안 가는 거다"라며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첫 마디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제게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십니까?'라고 했다, 그 다음에 악극이 들어 와서 최무룡 선생님 살아 게실 때 악극 '아리랑' 주연을 1999년도에 했고, 지금도 악극 '폭소 춘향전'을 12년 째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원숙은 "북한에서 한국 노래는 알고 있었냐"고 물었고, 김혜영은 "혜은이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당시 북에서도 인기가 많고, 최진희 '사랑의 미로'는 개사까지 할 정도로 인기였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본 곳은 KBS 방송국이었다, 그때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라며 "그리고 처음에 한국 와서 먼저 본 게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거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한국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유행을 몰랐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