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시완이가 영화 상견례 때 앞으로 나가서 마이크를 들고 제자리뛰기를 했어요. 적당히 엉뚱한데 무섭고 희한한 친구예요."(웃음)
배우 하정우가 올해 여름 개봉한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에 이어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으로 추석 극장가를 찾아왔다. 하정우는 '1947 보스톤'에서 임시완과 사제 케미로 극을 끌어간다. 각각 실존인물이자 마라토너인 손기정과 서윤복으로 분해 재미와 감동으로 스크린을 물들였다.
지난 9월27일 개봉한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하정우는 극 중 1947년 보스턴의 기적을 이끄는 마라톤의 전설이자 국민 영웅 손기정 역을 맡았다.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일본식 이름 '손기테이'로 호명되며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랐다. 이를 부끄러워한 손기정은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렸고,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더이상 마라톤을 할 수 없게 됐다.
'1947 보스톤'은 그런 손기정이 런던 올림픽을 위해 출전해야 했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마라톤 유망주 서윤복과 함께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해방된 조국의 태극마크를 처음 달고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보여준 손기정과 서윤복의 사제 케미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하정우와 손기정의 싱크로율은 놀라울 만큼 높다고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선생님 얼굴이 기셔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재단에서도 감독님께서도 너무 똑같다고 하시니까 '진짜 그런가?' 했고 사진 보다 보니까 비슷한 부분이 있나 생각이 이어지더라"고 털어놨다.
'국민 영웅'이라는 실존인물을 연기한 부담감도 있었을까. 이에 하정우는 "부담감을 이겨냈다기 보다는 손기정 선생님 재단이 있고 남아있는 가족이 있으시지 않나, 너무나 유명하시기 때문에 연기 자체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면서도 "일단 가족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신경 썼다"고 밝혔다.
하정우는 기존 영화와는 달랐던 캐릭터 접근법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그는 "보통은 내 자신으로부터 출발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손기정 선생님을 생각했다"며 "'선생님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 '선생님은 여기서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등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고민과 고난의 시간이 있으셨는데 함부로 해석하고 표현하기도 조심스러웠다"며 "감독님과도 '이렇게 해도 돼요?' '이 정도로 표현 가능한가요?'라는 대화를 나눴고, 유난히 많은 걸 감독님께 여쭤봤다"고 작업 과정에 대해 밝혔다.
영화에서 손기정은 강인한 캐릭터로도 묘사됐다. 하정우는 손기정을 이같이 표현한 이유에 대해 "저희 집안이 이북 출신이어서 아버지도 그렇고 큰아버지 등 집안 어르신 모습이 겹쳤었다, 큰아버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나리오에 소개된 감정선이나 실제 성격이나 그런 것들이 (저도) 이북 피여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접근이 수월했다"고 털어놨다.
하정우는 특유의 재치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도 마라톤 '승리' '만세' 이런 느낌이 아니더라"며 "뻔한 스토리나 뻔한 터치감일까 했는데 그것보다 쿨한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영화 보고나서는 너무 쿨한 느낌이더라 "제가 생각했던 결과물보다 약간 캘리포니아 스타일이었다, 한국 스타일의 그런 영화인 줄 알았는데 캘리포니아 스타일이었다"고 재치 넘치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하정우는 중앙대 선배이기도 한 강제규 감독의 절제된 연출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그는 "역시 선배님 답게 딱딱 디렉션이 주효할 때가 많았다"며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이 아니신데, 짚어주는 부분들이 놀라웠던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어 서윤복 어머니와 병실에서 만났던 장면에 대해 언급하며 "(서윤복 어머니와)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니까 그 장면에서 감정이 애매하더라"면서 "보통 1차원적으로 판단해서 감정 과잉으로 디렉션을 하실 법도 한데 그 정도까지의 감정은 아니라고 하셨다,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데 절제를 하시더라, 쿨한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무엇보다 '1947 보스톤'은 하정우의 유머로 빛낸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아이 엠 해피'(I am happy) '아이 엠 러너'(I am runner) 등 생존식 영어 대사가 웃음을 빵빵 터트린다. '아이 엠 해피'를 힘주어 말하던 손기정이 '아이 엠 노 해피'(I am no happy)라고 외치는 장면은 큰 웃음 포인트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애드리브였다"며 "시나리오를 많이 보는 편인데 더 좋은 대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대사 한마디가 주는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연구해서 감독님께 검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유독 최근 작품에서 생존식 영어가 빛을 발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2022)과 최근 개봉한 '비공식작전'에서도 그랬다. 하정우는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습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외국어 연기를 할 때는 물리적 시간을 투자해서 많이 연습할 수밖에 없지만 '아이 엠 해피' 정도는 내가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하정우는 함께 주연을 맡았던 서윤복 역의 임시완과의 비화도 대방출해 인터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후배 임시완에 대해 "싹싹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미워할 구석이 없다, 성실한 막내 후배 느낌"이라면서도 "적당히 엉뚱한데 무섭고 희한한 친구"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1947 보스톤'으로 상견례를 했던 경험도 떠올렸다. 그는 "상견례 할 때 배우들이 나와서 인사말을 하는데 임시완의 실물을 처음 봤다"며 "그때 나가서 마이크를 들고 제자리뛰기를 하더라, 자기는 '영화 끝까지 뛰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나"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하정우는 "도경수, 최시원 등 많은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봤는데 첫인상은 '독특한 아이다'였다"며 "본인이 막아버리니까 얘길 길게 나누진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바이브를 갖고 있어서 이번 작품 마라톤 장면의 임시완을 봤을 때 남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이 역할을 잘할 수밖에 없다"라며 "(임시완은)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에너지가 있다"고 인정해 폭소를 자아냈다.
하정우는 임시완의 진지한 면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시완이는 질문하는 게 아카데믹하다"며 "연기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기자분들이 질문하는 걸 물어본다, '이 질문을 왜 나한테 하지?' 했는데 알고 보니 뭐든지 열심히 하는 친구더라, 배우로서 일하는 데 있어 진심이고 끝까지 노력하는 순수한 열정인 것이었더라"고 깨달았던 점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이어 하정우는 "캐릭터를 위해 몸을 만들고 식단 조절을 하는 게 징그러울 정도로 하더라"며 "그런 것이 아마 서윤복 캐릭터를 소화하고 영화의 마지막 마라톤 장면을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했다"락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 이 영화에서 감동 포인트가 아닌가 싶었다"며 "멋지게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하정우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사와 함께 해온 배우다. '추격자'(2008) '국가대표'(2009) '황해'(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베를린'(2013) '더 테러 라이브'(2013)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암살'(2015) '아가씨'(2016) '터널'(2016) '1987'(2017) '신과 함께' 시리즈(2017·2018) '백두산'(2019)까지 필모그래피엔 대표작들이 빼곡하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비공식작전'이 흥행에 부진하면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에 그는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콘텐츠 '먹을텐데'에서 주지훈과 '비공식작전'의 스코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정우는 솔직한 심경을 밝힌 이유에 대해 "시청자, 관객분들, 기자분들이 저를 1~2년 본 것도 아닌데 속상한 마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게 저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며 "모든 영화가 자기가 낳은 자식 같은 건데, 그랬을 때 그 안에 있을 때 너무 속상하고 답답한 많은 감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영화가 (성적이) 왜 이렇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도 있었구나' 그렇게 이해가 된다"며 "그때보다 지금 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정우는 "작품 잘돼서 정말 행복하길 기대했는데 ('비공식작전'과 같은) 그런 결과를 얻게 되면 가슴이 아프다"며 "최근에도 서로 위로하고 우정다짐하고 눈물 파이팅을 했다, 펑펑 운 건 아니지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있는 파이팅, 없는 파이팅 하면서 해단식 같은 개념으로 손잡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정의 교감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정우는 '1947 보스톤' 홍보 중이지만,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5)에 이어 세 번째 연출작인 '로비'도 촬영 중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일이 많다"며 "쉬는 날이 없다"고 웃었다.
끝으로 하정우는 '1947 보스톤'에 대해 "명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며 "그렇다고 꼭 가족 단위가 아니어도 쉽게 관람할 수 있는 감동적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영화라기 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고 본다"며 "재밌게, 부담 없이, 큰 고민 없이 만끽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