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기생충'(감독 봉준호)과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의 조감독 출신. 필모그래피의 가장 최근 부분만 읽어도 눈이 번쩍 뜨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이라면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로 데뷔한 김성식 감독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만하다.
지난 27일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김성식 감독은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뿐 아니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의 조감독을 했으며 이번 영화의 제작사인 외유내강과는 '군함도'의 연출부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유명 감독들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에 대해 거론하자 김 감독은 "인터뷰 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애니메이션 전공자인 김성식 감독은 영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영화계와는 아무런 연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를 영화화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도 즐겁게 봤던 '설국열차'를 원작으로 자기 만의 시나리오를 써서 그것을 봉 감독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 가지고 갔다.
"영화 일을 너무 하고싶었어요. 제가 울산에 사는데 서울에 올라와 봉준호 감독님의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데까지 와서 기다렸다가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한 번 봐달라고 드렸는데 감독님이 '이런 걸 왜 저한테 갖다주세요, 이 영화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창작물을 이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셨었죠.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에 봉 감독님의 조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어요. 연출부를 할 수 있겠느냐고요."
비록 '설국열차'의 연출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하지 못했지만 곽경택 감독의 '미운 오리 새끼'(2012)부터 시작해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의 연출부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다. '해무'(감독 심성보)로 제작자 봉준호 감독과 재회한 김성식 감독은 '기생충'에 조감독으로 합류하며 봉준호 감독의 제자가 됐다.
스승이자 선배 감독인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은 데뷔를 앞둔 김성식 감독을 물심양면 도와줬다. 두 사람 모두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해줬다고.
"박찬욱 감독님의 피드백을 받았었고요. 초기에 봉감독님도 시나리오를 보시고 한 시간 정도 디테일하게 모니터링을 해주셨어요. (봉 감독님의 후배인) '잠'의 유재선 감독도 계신데, 봉 감독님이 '유재선 감독의 시나리오가 죽인다, 너도 잘해야 한다' 하시면서 경쟁 의식을 심어 주시더라고요.(웃음) 박 감독님, 봉 감독님 두 분이 공통적으로 얘기하신 것은 유머의 절제였어요. 남발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만 하라고요. 악인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그리기 보다 주위 상황과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셨어요. 두 분 다 공통적으로 해주신 애기가 있어요. '이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닌데 어떡하냐'라는 얘기였어요.(웃음) '그래도 봐주세요' 했었고요. 그렇게 고민하시면서도 같이 고민을 많이 해주셨죠."
김성식 감독이 '기생충'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사실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기생충'의 지하실 부부인 근세, 문광 커플을 연기한 박명훈, 이정은이 역시 부부로 등장하는 것. 다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기생충'에서와 달리 박사장의 저택을 연상케 하는 호화스러운 저택에 거주하는 유복한 부부로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기생충'을 찍으며 가장 마음 아프게 느꼈던 근세와 문광을 영화로나마 부활시켜보고 싶었던 김 감독의 바람이 담긴 패러디 신이다.
이 장면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반응은 어땠을까.
"시사회 때 (봉 감독님이) 민망하게 제 뒤에 앉으셨어요. 그 장면에서 유독 엄청 웃으셔서 일부러 그러시나 했었어요. '왜 이렇게 웃으시지? 그렇게 웃긴 거 같지 않은데, 일부러 웃으시나' 했었죠."
봉준호와 박찬욱, 두 거장에게 김성식 감독은 갚아야할 은혜가 많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데뷔 동기'인 '잠'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키드'라고 불리는데 자신은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묻자 그는 "제가 여쭤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어 웃음을 줬다.
"엄마는 봉 감독님, 아빠는 박 감독님인 것 같아요. 다른 감독님들도 계신데, 이걸 보시면 서운해 하실 것 같아요. 장준환 감독님과 연상호 감독님도 있거든요. '부산행' 때 VFX 담당을 했었어요. 연상호 감독님에게는 기발하고 번뜩이는 순발력을 많이 배웠고, 장준환 감독님에게서는 작품을 정말 진심으로 대하시는 자세, 순수성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강동원이다. 김성식 감독은 주연 배우 강동원에 대해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첫 장면에서 눈을 뜨실 때 동공과 표정, 피불결까지 예쁘시더라, 모공까지 아름다우시다,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며 눈길을 끌었다.
강동원은 의외로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김 감독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크리스마스 때 연락을 받았다, 선물이었다"며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전우치'와 '반도'를 보면서 항상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스 스피겔 같은 캐릭터인데 그게 누굴까 생각했는데 (강)동원 선배님이었어요. 선배님이 안 되면 저는 다시 조감독을 할 계획도 있었어요. 선배님이 아니면 이건 들어갈 수 없다. 못 들어간다 생각했었죠."
마음에 꼭 드는 배우들과의 작업은 행운이었다. 동갑내기 이동휘는 프리프로덕션 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함께 했던 아역 배우 박소이는 배역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꿀 만큼 애착이 가는 캐스팅이었다.
추석에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말고도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거미집'(감독 김지운) 등의 영화가 개봉한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룬 두 거장과 맞붙는 신인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감회가 새로웠어요. 중학교 때 '쉬리'를 단체 관람으로 봤었는데...제가 영화 과를 나오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김지운 감독님의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의 코멘터리를 많이 봤었어요. 강제규 감독님의 작품도 '태극기 휘날리며' 코멘터리를 많이 봤었고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 송강호 선배와 같은 날 영화를 개봉하게 돼 영광이에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