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처음 제안을 받고, 살아갈 이유가 생겨서 참 좋고 기뻤어요. 앞으로 제 인생에, 12년간 할 일이 생겼다는 게 감사해요."
'시편 150편 프로젝트'의 작사 및 작곡 팀에서 활동하게 된 가수 한수지가 말했다. NGO단체 복음의 전함이 주관하는 '시편 150편 프로젝트'는 성경의 시편 150편 전편을 12년6개월간 150편의 노래로 만들어 제작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첫번째 결과물인 '시편 1편'은 지난달 3일 월드컵 상암 경기장에서 개최된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에서 가수 김태우, 헤리티지 매스콰이어, 한수지의 합창으로 10만 청중 앞에서 소개됐다. 이 곡은 한수지가 직접 작곡하고 성경 말씀을 활용해 가사를 붙였다. 이렇게 쓰일지 모르고 만들어 놓은 곡이었다.
"저희 아버지까 돌아가실 즈음이니까 '도깨비' OST 음원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응급실에 들어가신 뒤, 병원 복도에 서서 기다리는데 멜로디가 들렸어요.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멜로디를 녹음했죠. 저에게는 뜻깊은 음악이라서 언젠가는 의미있게 쓰일지 모르겠다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용됐네요."
'시편 1편'이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에서 불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됐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한국 기독교 부흥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수지는 김태우, 헤리티지 메스콰이어와 함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무대에 설 당시를 떠올리며 "은혜가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은 방송 사고가 있었어요. 화면이 원래 예정보다 먼저 나왔거든요. 그런데 음악과 화면이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전 지휘자로 그 자리에 간 건데 김태우씨가 저보고 앞에 서라고 하셨어요. 그 덕에 생각보다 화면에 너무 많이 잡혀 민망했지만 그 자리 참석한 엄마는 많이 좋아하셨죠.(웃음) 준비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은혜로웠어요. 제가 많이 배웠어요. 전 노래하는 사람인데 레코딩부터 시작해서 크레딧에까지 관여했거든요. 저에게 떨어지는 숙제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 앞으로도 뭔가 많이 하게 될 것 같네요.(웃음)"
'가수 한수지'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낯설 수 있지만, 그가 참여한 드라마 OST 목록은 화려하다. KBS 2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메인 타이틀곡부터 시작해 SBS 드라마 '엔젤 아이즈', '눈꽃'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 '도깨비' OST를 가창했다. 특히 '도깨비'의 '윈터 이즈 커밍'(Winter id coming)과 피처링으로 이름을 올린 '라운드 앤 라운드'(Round and Round)는 드라마 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tvN '빈센조' OST에 참여했다. 한수지는 대학교에서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학생들도 가르쳤다.
"오랫동안 이름 없는 가수로 활동했어요.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맨땅에 헤딩하듯 여기까지 온거죠. 그저 배리어스 아티스트(Various Artists)라는 이름으로 제가 부른 노래들이 나가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 '엔젤 아이즈'(2014)라는 드라마 메인 타이틀을 불렀을 때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오프닝 타이틀을 누가 부르는 거냐고 질문이 올라온 거예요. 그때부터 제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것도, 작곡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사랑받는 노래를 부르고 만들 수 있었을까. 사실, 한수지는 국가대표 수영 선수 출신이다.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64개, 은메달 43개, 동메달 18개를 땄다. 근대5종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했다. 인생의 초반은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었다.
"선수 은퇴 4년 전쯤부터 교회 CCM 밴드 보컬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냥 재미로 한 건데 은퇴 후에 이상하게 음악하는 쪽으로 일이 풀렸어요. 원래 제 꿈은 대한체육회장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 꿈을 위해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도 계속 음악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운명인가, 하고 받아들이게 됐죠."
싱어송라이터가 되게 된 계기도 숙명적이었다. 곡을 주지 않으니 만들었다는 것.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앨범을 만들 때 작곡가에게 곡을 부탁했었어요. 그런데 1년이 걸려도 곡을 안 주더라고요. 화가 났어요. 열이 받아 곡을 썼던 게 '시련이 와도'였어요. '나의 슬픔을 받아주소서'라는 가사가 붙은 그 멜로디가 처음 떠올랐어요. 그리고 나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시련이 와도'는 2015년 발매된 가수 이승철 12집에 실렸다. 국가대표 수영 선수에서 이름 없는 가수로, 이름없는 가수에서 자신이 쓴 노래를 세상에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곡가로, 제자리를 잡고 여기까지 오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음악이 저의 친구였던 것 같아요. 선수를 할 때, 웨이트를 할 때도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음악 틀어놓고 춤 추면서 운동하고 역기를 들고요. 지금 제가 꾸는 꿈은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나 '가시나무' 같은 노래처럼 종교적인 색채가 있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들어도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거예요. 항상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음악 작업을 해요. 하나님, 예수님 얘기를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고 음악 속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의미있는 곡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한수지는 12년6개월간 계속된 '시편 150편 프로젝트'의 작사 및 작곡 담당자로서 계속 함께할 예정이다. 복음의 전함은 올해 9월30일까지 시편3편부터 12편을 내용으로 한 '시편 150편 프로젝트' 곡을 공모 받고 11월부터 매달 10일 당선작을 발표한다. 11월10일에는 3편, 12월10일에는 4편 당선작을 발표하는 식이다. god 멤버이자 솔로 가수 김태우는 당선작 심사워원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다.
각 편별 최우수작은 150만원의 창작지원금과 상장을 받게 되며 일부 곡은 유명 가수가 참여한 음원으로 발표된다.
150편 중 첫번째 편을 만든 싱어송라이터로서, 또 이 프로젝트의 키 스태프로서 공모에 참가할 참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한수지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행복하게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시편 150편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믿음의 유산을 남길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이 프로젝트가 말씀과 멀어져 가는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