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뉴스1은 격주 일요일마다 '알고보니'를 연재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궁금할 법한, 그러나 논쟁이 될 수 있는 법률적인 사안을 풀어 쓰겠습니다. 독자분들이 '알고 나면 손해 보지 않는 꿀팁'이 되도록 열심히 취재하고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 남편을 수년간 병간호하다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민영씨(가명·44·여). 슬픈 마음을 겨우 추슬렀지만 곧이어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남편 명의 아파트가 남편 형제들의 명의로 이전된 것이다. 남편이 평소 소유하던 값비싼 물건들도 모두 형제들에게 넘어갔다.
민영씨는 형제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이들은 남편의 유언장을 보여줬다. 유언장에는 '나는 부인에게 한 푼도 유산을 안 남긴다. 아파트는 형제 A에게 절반을 주며 나머지는 다른 형제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 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A가 가져간다'고 적혀 있었다.
충격 받은 민영씨는 법원에 '유언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법원은 남편의 유언장이 유언으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민영씨의 손을 들어줬다. 유언장의 형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왜 이 유언장은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걸까.
먼저 유언의 방식은 △자필유언 △녹음유언 △공증유언 △비밀유언 △구두유언 등 5가지다.
그런데 민영씨 남편은 유언장을 '직접' 손으로 작성하지 않은 데다 도장 대신 서명을 했기 때문에 유언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민법 제1066조에 따르면 법적요건에 적합한 자필증서가 유언의 효력을 발휘하려면 전문을 당사자가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 요컨대 워드프로세서 등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남긴 유언은 무효인 셈이다.
연·월·일과 성명 또한 유언에 기재해야 한다. 이때 성명 옆에 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도장 대신 서명을 한 것은 효력이 없다.
상속 재산의 주소 또한 유언장에 자세히 기재해야 한다. '재산 일체' '내가 사는 아파트' '안방에 있는 통장 2개' 식으로 다소 모호하게 써선 안 된다. 계좌번호와 소재지 등을 정확히 기재해야 하는 셈이다. 최근 대법원은 '동'까지 기재한 유언에 자필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내용에 따라 유언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유언자가 평소 원한이 있는 B씨에게 보복한 사람에게 10억원을 물려준다는 내용을 유언장에 기재했다면 이는 무효가 된다.
유언 능력이 없는 사람의 유언 역시 법원에서 무효가 될 수 있다. 만 17세 미만 미성년자가 남긴 유언,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고 있거나 수술 직후 사리분별이 없는 이가 남긴 유언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