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민주 조현기 기자 = "원룸 비싸서 엄두도 못내요, 하숙도 한달에 65만원 내고 살아요"
지난 12일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의 한 하숙집 앞에서 만난 이모씨(22·여)는 학교 주변 월세집은 처음부터 알아보지도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씨는 "주변에 월세 사는 친구들 보면 기본 한달에 70만~80만원에 관리비나 생활비까지 더하면 100만원은 훌쩍넘는다"며 "추가 비용 조금 아껴보려고 하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으로 출퇴근을 하는 30대 김모씨는 집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서강대 근처 대학가를 떠날 생각이 없다. 김씨는 "대학가 근처라서 1인 가구가 간편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많아서 편리하다"며 "광화문 인근으로 이사할 경우 지금보다 최소 1.5배 이상의 주거비용이 들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월세와 고물가 신음하고 있다. 대면 수업 정상화로 대학가는 활기를 되찾았지만 갑자기 뛰어버린 월세와 밥값에 청년들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일부 대학생들은 밥값을 아끼기 위해 자취 대신 하숙을 선택했고 월세 부담에 고시원으로 옮긴 이들도 적지 않다. '1000원 학식'을 먹기 위해 '오픈런(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는 행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처한 현주소다.
신입생 S양(20)은 "대학에 들어오면 뭔가 빛이 보일 것 같았는데 월세에 생활비 부담까지 고등학생 때보다 때론 더 우울한 것 같다"며 "엄마 아빠가 그동안 짊어져온 무게를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기본'…더 오른다
고물가·고금리에 대학가 월세 가격도 올라 집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가 주변의 방은 이미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수요는 넘쳐나고 방은 한정돼 있다보니 집주인도 부담 없이 방 값을 조금씩 올리는 추세다.
서대문구 대학가에서 주로 원룸 중개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벌써 1,2월에도 방이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며 "지금 그나마 있는 방은 신축이라서 월 100만원부터 시작하다보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 주변에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5만원인 오피스텔 원룸로 최소 7월까지는 기다려야 방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또 인근의 한 공개중개사는 "살 사람은 넘쳐나고 방은 적다보니 건물 소유주들도 계속해서 올려도 금방 다 나간다"며 "기존에 사는 학생들은 방이 비싸서 알아보려고 왔다가 결국 그만한 가격의 방이 없어서 연장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 인근 지역 원룸 시세를 분석한 결과 보증금 1000만원 기준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 평균 월세는 59.6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해 15.14% 오른 수치다.
월세가 60만원을 넘는 대학가도 작년 3월 2곳(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에서 올해 6곳으로 늘었다.
다방은 "월세의 경우 금리처럼 변동하지 않고 계약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지불해 금전 계획 수립에 더 안정적이어서 선호도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 졸업해도, 취직해도 대학가 못 떠나
대학가 원룸이 품귀현상을 빚는 것은 구조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재학생 뿐만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도, 심지어 취직에 성공한 사회초년생도 대학가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평일과 주말 모두 과외를 하면서 용돈에 보탠다는 B씨(24·여)는 "졸업을 하려면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토익 자격증도 있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도 있는데 용돈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다"며 "월세에 생활비에 150만원은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대학생들에게 대학가 외의 선택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도 취업 준비는 서울에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취직 전까지 학교 근처에서 오래 거주했던 이모씨(28·여)는 "면접은 보통 아침 일찍부터 가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가인 수원에서 왔다갔다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며 "취업 정보를 듣기 위해서라도 스터디를 하는 편이 좋은데 서울에 모임이 많아서 구하기가 편리하다"고 말했다.
5년동안 거주했던 흑석동을 떠나 최근 숙대입구역 근처로 이사한 박모씨(29)는 "대학가는 아직 6000원짜리 밥을 파는 맛집이 있지만 다른 곳은 한 끼에 1만원은 거의 다 넘어간다"며 "돈을 아껴야 하는 시기에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해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또래들은 한 달에 얼마큼 저축할 수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금액을 획기적으로 보전하는 방법이 대학가에서 학생들과 생활 반경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