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고 "아픈 아이들을 고쳐 주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오늘자로 대한민국에서 소청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턱없이 낮은 진료비가 지속돼왔고, 유일한 비급여 시술이었던 소아 예방접종도 국가 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돼 건강보험에 적용되면서 동네 병의원의 경영이 무척 어려워졌다는 입장이다. 소청과는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다.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는 셈이다. 하지만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 간 1만7000원가량(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동네 병·의원) 기준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 1만7611원)으로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소청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한 2020~2021년에는 7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국 소청과 병·의원은 3247곳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라는 길을 택하는 전공의 수도 줄고 있다. 2023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에는 199명 모집 중 33명만이 지원해 16.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임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 지난 5년간 662개가 폐업했다.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됐고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소아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 영역의 의사들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보건복지부는 미흡하기 그지없는 정책들을 내놨다. 빈 껍데기 정책들만 내놨다"고 주장했다. 이어 "복지부, 질병청, 기재부가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니라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면 소청과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데 의사들이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을 통해 중증 소아 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 공공진료센터와 24시간 소아 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각각 4곳씩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응급실에 데리고 올 정도면 중증 환아일 가능성이 높아 소청과 레지던트 등 소청과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소청과 의사 공백으로 진료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핵심인데, 복지부는 엉뚱하게 시설확충을 해결책이라고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응급실과 병실 시설은 갖추고 있지만, 소청과 의사가 없어 입원 치료가 불가능해 응급 소아 환자를 받을 수 없는 대학병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의 경우 오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진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 회장은 "아이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내원해도 고려해야 할 수많은 다른 질환들이 있고, 의사 표현도 미숙하고, 면역력이 낮은 아이들은 병이 급격히 나빠져 대면 진료조차 오진의 가능성이 있는데,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에서 전화를 통해 증상을 상담하고 처치를 안내하는 것은 정신 나간 발상"이라면서 "심지어 복지부가 참여 주체를 '의료인'이라고 명시한 것은 소청과 전문의가 아닌 간호사를 동원할 의도를 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의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육성에 대해서는 "상류에 유입되는 물(소청과 전공 의사가 있는 인턴)이 없는데, 중류(소청과 전공의)와 하류(소아암 세부 전문의)에 물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는 비판을 했다. 소청과 전문의는 추가적인 수련을 거친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응급의학과 등으로 다양하다.
소아 진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내놓은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대책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에는 밤 11시, 휴일에는 저녁 6시까지 어린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이다.
임 회장은 "이미 6년간 시행해 실패한 정책을 재탕도 모자라 확대하겠다고 한다"면서 "천만 인구의 서울에조차 제대로 된 달빛병원은 연세곰돌이소청과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달빛어린이병원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여러 문제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 내 소아의료 관련 전문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아 중증 수술 등 필수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각종 지정·평가기준 등에 전문의 고용 노력의 정도를 반영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국의 모든 소아 관련 의료 인프라가 동시에 무너져 내린 상황이고 극히 일부의 서울 지역 대학병원 만이 근근히 땜빵 수준으로 버티는 상황인데 정말 현실 인식이 없는 잠꼬대에 불과한 대책"이라면서 "장중첩증 수술, 소아 중증외상 수술, 소아암 수술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가능하고 5년 뒤에는 몇 개나 가능할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 "의사회의 폐과 선언에 대해서는 국민의 소아 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대책 발표 이후 소아청소년과학회, 지역사회 병·의원과 소통하며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보완책을 만드는 중"이라며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