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지하철 신분당선 강남역 5번 출구 앞. 운동복을 입은 미국 국적의 존 빈센트 시치씨(52)는 하염없이 러닝머신 위를 걷고 있었다. 앞에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존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곳곳에서 3시간가량 러닝머신 위를 걷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던 그가 러닝머신 위를 걷는 이유는 아이를 빼앗긴 자신의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존씨는 '왜 하필 러닝머신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리 걸어도 아이들에게 닿지 않는 내 모습과 같다"고 답했다.
지난 2013년 8월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인 여성 A씨와 결혼한 그는 슬하에 6살 아들과 4살 딸을 뒀다. 그런데 부부 사이의 문제가 생긴 뒤 지난 2019년 11월 A씨는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존씨는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 청구 소송을 냈고 승소했지만 아내는 미국 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존씨는 지난 2020년 8월 한국으로 들어와 서울가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국제적 아동탈취의 민사적 측면의 협약)에 따라 자녀들을 존씨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초엔 대법원도 원심을 받아들이는 확정판결을 냈다.
미국 법원에 이어 한국 법원도 존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A씨의 감시하에 제한적으로 단시간 이뤄지는 통화에서 "재판이 나쁘고 아빠도 나쁘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이어 지난 2021년 두차례에 걸쳐 집행관은 유아인도명령 이행을 위해 아이들을 찾아갔지만, 엄마의 방해 및 아이들이 엄마 곁에 있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강제집행을 포기했다. 법원이 감치명령과 간접강제 배상명령(1일 50만원)을 내렸지만 강제집행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아이들의 의사나 실질적 보호자가 반하고, 아내 측에서 잦은 이사로 주거지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씨는 "아이가 어머니 없이 자라는 것도 원치 않고 최대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도 "하지만 아내가 계속 법원 명령을 거부하고 소통을 단절하면 직접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2021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 중 존씨와 유사한 상황을 겪은 프랑스인 아내 B씨가 한국인 남편을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고소 후 승소해 아이를 돌려받은 사례가 있다.
박주현 변호사(법무법인 중용)는 "강제로 아이를 데려갔다면 상대방을 미성년자약취죄로 고소해서 경찰이 지명수배하는 방법으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법원 명령이 있는데도 소통이 안 되고 주거지가 일정치 않으면 지명수배할 경우 도주 우려 등 구속 사유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