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뉴스1) 조영석 기자 = 동생이 자동차 사라고 준 2000만원에 아내와 해외여행 가려고 모아온 1000만원을 보태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어놓은 아파트 경비원의 따사로운 사연이 봄날의 햇살처럼 퍼지고 있다.
주인공은 58년 전 장성 월평초등학교를 졸업(41회)한 올해 72세의 장임진씨. 장씨는 2010년 해양경찰을 퇴직한 뒤 광주의 한 공동주택 경비원으로 2년째 일하고 있다.
"그럼 해외여행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월급 나오면 이달부터 다시 부지런히 모으면 된다"는 웃음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앞서 장씨는 지난 2일 월평초등학교(교장 이영란) 입학식이 있던 날, 모교 2년 후배이자 친동생인 윤진씨(69)와 함께 교장실을 찾아 "후배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300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장씨가 장학금 기탁을 실행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과수원을 운영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동생 윤진씨가 올 초 '자동차 한 대 뽑으시라'며 생각지도 않았던 2000만원을 손에 쥐여 주면서부터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20여년이 다 돼가는 낡은 SUV인데 동생이 보기에 안 좋았나 봐요. 차 사는데 보태라며 돈을 주더군요.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이 산골 오지여서 비포장도로를 오가야 하고, 또 나이도 있어서 곧 면허증도 반납할 텐데…"
장씨는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지난해부터 매달 100만원씩 저축해온 적금까지 해약했다.
장씨는 새 자동차의 필요성을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바꿔 좋은 일에 한 번 써보자며 동생 윤진씨와 '하이파이브' 했다.
초·중학교까지만 정규코스로 마친 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전국 1등으로 졸업한 형과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생업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동생의 의기투합이다.
"코로나가 풀리면 당신의 소원인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며 아내와 새끼손가락을 걸었지만 장씨는 '일은 때가 있는 법'이라며 아내와의 약속을 뒤로 미뤘다.
"여행경비야 다시 부지런히 모으면 되지만 장학금은 지금 아니면 다른 곳에 써 버릴 것 같았지요. 하지만 아내와 상의도 없이 한 일이라 무척 미안하죠." 속내를 조심스레 전할 때는 여느 남편들처럼 목소리가 낮아졌다.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나라고 왜 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돈이 있다고 해서 살림이 펴지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쪼들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동생이 흔쾌히 뜻을 받아줘서 고맙지요.”
동생 윤진씨는 "생각도 못 했는데 형님이 그런 제안을 하기에 뜻대로 하시라 했어요. 나는 3년 전 새 차를 한 대 뽑아 타고 다니는데 형님은 너덜너덜한 낡은 X차를 타고 계셔서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죠. 그런데 자동차 사는 것보다는 좋은 일에 쓰자고 하시는데…. 아쉬움도 조금 있었지만 그러자고 했죠."
동생의 마음을 아리게 후비는 것은 형님의 자동차가 낡아서만은 아니다. 윤진 씨는 자신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을 위해 큰돈을 들여 집 한 채를 선물로 마련해준 형의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7년 어느 날 외항선 항해사로 근무하던 형이 황룡시장 근처에 당시 500만원짜리 집을 한 채 사 주셨어요. 힘들게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가 봐요.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지요. 광주에도 500만원짜리 집이 몇 채 없던 시절입니다.
서로를 위하는 형제간의 우애가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기탁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들 장임진·윤진 형제가 기부한 장학금은 월평초등학교 학생들의 신입생 축하금과 졸업생 장학금으로 쓰이며 수많은 임진·윤진 형제의 민들레 홀씨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