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이쪽은 개화파고 저는 흥선대원군이었죠."
지난 1월 말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이하 '알쓸인잡')의 양정우 PD가 후배 전혜림 PD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쓸인잡'은 흥선대원군 양정우 PD와 개화파 전혜림 PD가 함께 완성한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PD와 함께 '알쓸신잡' 때부터 '알쓸' 시리즈를 이끌어 온 양정우 PD는 시청자들이 사랑한 '알쓸' 시리즈 특유의 색깔과 정체성을 지켰고, 이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전혜림 PD는 여기에 '인잡' 만의 새로운 개성을 만들었다.
'알쓸인잡'은 2017년 처음 방송됐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연출 나영석 양정우)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인간을 탐구하며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분야별 전문가들이 나누는 대화를 담아냈다. 소설가 김영하(문학), 김상욱 교수(물리학), 이호 교수(법의학), 심채경 박사(천문학)가 패널로, 장항준, 방탄소년단 RM(알엠·김남준)이 MC로 함께 했다.
'알쓸인잡'의 전신인 '알쓸신잡'은 2018년 시즌3까지 총 세 편이 나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범죄를 소재로 한 스핀오프 '알쓸범잡1'(2021)과 '알쓸범잡2'(2022)이 나와 '알쓸신잡' 못지 않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 신의 한 수, BTS RM(김남준)의 캐스팅
'알쓸신잡'은 뮤지션이자 MC인 유희열이, '알쓸범잡'은 역시 가수이자 방송인인 윤종신이 진행을 맡아 유려한 진행 솜씨를 뽐냈다. 방송 경력이 오래된 두 MC는 각기 다른 분야에 속한 패널들을 아우르며 편안한 토론을 이끌었다. 그런데 '알쓸인잡'은 기존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 전문적인 진행자가 아닌 장항준 감독과 아이돌 그룹 멤버인 RM의 2MC 체제를 택한 것.
"RM이라는 친구를 한 번 '알쓸' 시리즈에서 녹여보면 좋겠다는 얘기 나온 게 수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워낙 해외 활동을 하기도 했고, 박사님들이 나오시는 포맷이다 보니 RM이 어떤 자리에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답을 찾지 못했어서 아이디어 상태로만 있었었죠."(양정우 PD)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자 의지를 냈던 이는 후배인 전혜림PD였다.
"처음 기획을 할 때 '알쓸' 시리즈가 약간 새로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통이 있는 시리즈이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보니 새로움의 포인트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섭외적으로도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고민하던 차에 메인 작가님이 RM을 섭외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고, RM에 대해 자료 조사한 것을 보여주셨어요. 자료를 보면서 저도 홀딱 빠져 너무 잘 어울리겠다, 해보자고 했고 이후에는 (양정우)선배님을 찾아가 설득했죠."(전혜림 PD)
처음에 양정우 PD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슈퍼스타인 RM을 캐스팅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RM이 전문적인 MC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MC 체제의 변화가)필요한 변화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오래된 팬들은 기존의 포맷을 유지하기 원하는 분들도 있으실테니까요. 어쩌면 해오던 것을 하는 것이 올드할 지언정 옳은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또 RM이 여기 나오는 선생님들과 연배 차이가 나고 공감대도 적을 것인데다가 MC 역할을 해본 적도 없어서 단기간에 의욕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었었죠."(양정우 PD)
하지만 계속 의견을 나누면서 양 PD 역시 RM의 MC 섭외를 긍정적으로 보게 됐고, 섭외에 나섰다.
"한 번 거절을 당했었죠. 그때는 스케줄이 안 됐었거든요. 그러다가 한 두 주 후에 연락이 왔어요. 혹시 MC 자리가 정해졌느냐고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타이밍이 잘 맞아 남준씨를 섭외할 수 있었죠. 장항준 감독님은 놀라셨어요. 감독님께 2MC 체제를 말씀드렸을 때 '그래 누군가 함께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하셨는데, 상대로 누굴 캐스팅 했는지는 말씀을 안 드렸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남준씨 얘기를 드렸더니 담담하게 '어, 정우가 월척을 낚았어'하고 끊으셨던 기억이 나요. 그러고 나서 주변 지인들에 엄청 자랑하셨대요.(웃음)"(양정우 PD)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제 프로그램이라서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요.(웃음) 장항준 감독님이나 남준씨나 두 분 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세요.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들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야 리액션도 나오고 질문도 하고 있으니까요. 또 두 분이 나이 차가 있음에도 친구처럼 잘 진행하셨어요. 그것도 의외고 너무 좋았어요. 나중엔 서로 장난도 치시고 합이 맞아가는 걸 보는 게 재밌었죠."(전혜림 PD)
MC RM의 가능성을 확인한 지금, 다음 '알쓸' 시리즈에서도 진행을 맡은 그를 볼 수 있게 될까.
"장항준 감독님은 사실 방송을 오래 하시기도 했고 검증된 분이었는데 남준씨의 이런 활약은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그래서 현장 끝나고 쉴 때나 저희끼리 회식 할 때 자주 얘기했었어요. '다음 프로그램은 이런 걸 언제 같이 해보시죠.' 엄청 얘기했는데 답은 못 들었어요. 그냥 웃으시더라고요. 계속 들이대려고요."(양정우 PD)
◇ '알쓸인잡'의 시작, 김영하 작가의 글귀
'인간'이라는 소재는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집 '보다'에 나온 글귀 한 구절에서 시작됐다. 전혜림 PD는 새로운 '알쓸' 시리즈를 기획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보다'를 읽던 중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이라는 한 구절에서 번뜩 영감을 받았다.
"(잡학박사들 중) 김영하 작가님을 처음 만났어요, 작가님과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요. 인간이라는 주제에 굉장히 끌려 하셨어요. 인간 이야기라는 것이 소설 쓰시면서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들 인간 얘기에는 한마디씩 거들 수 있잖아요. 대화를 나누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양정우 PD)
'알쓸인잡' 최고의 발견은 심채경 박사였다.
"심채경 박사님은 책으로 먼저 접했어요. 섭외를 할 때 아무래도 책을 쓰신 분이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게 많거든요. 박사님이 쓰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봤는데 그 책이 '알쓸인잡'과 너무 딱 맞은 책이었어요. 일상의 모든 영역을 천문학적으로 생각하시고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대중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갖게 됐어요. 팬이 돼버렸죠. 실제로도 만나뵈니 강단있고 단단한 분이셔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전혜림 PD)
'알쓸범잡'으로 인연을 맺은 이호 교수는 방송에서처럼 실제로도 따뜻한 사람이라 제작진들에게 자주 밥을 사줬다. 전혜림 PD는 "틈만 나면 전주에 내려오라고 하신다, 맛있는 걸 엄청 사주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교수님 연구실에 놀러갔을 때 다양한 책이 정말 많았어요. 케이팝에 관한 책부터 종교 서적, 인문학 책, 소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는데 그걸 본인만의 분류법으로 분류해 놓으셨고 매일 그걸 하셨어요.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정말 많으시구나, 이런 걸 방송에서 얘기해주시면 좋겠다, 나만 듣는 건 아깝다 싶었죠. 기본적으로 따뜻하신 분인데 그런 것들이 지식과 섞여 나오니까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서는 콘텐츠로 나오더라고요. 그런 것이 너무 대단해 꼭 같이 하고싶었어요.(전혜림 PD)
< 【N인터뷰】②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