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2020년 12월 택배기사로 일하던 A씨(34)는 유기견 출신의 몰티즈 견 경태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다.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태와 하루종일 함께 돌아다니는 '경태아부지' A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이들은 유명세를 탔다.
A씨가 일하던 택배회사는 경태를 택배견으로 임명하며 홍보했다. A씨는 '경태아부지'라는 이름의 SNS 계정을 개설하고, '태희'라는 이름의 또 다른 반려견도 입양해 수만명의 팔로워까지 모으는 등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갑자기 받게된 큰 관심 때문이었을까. A씨, 그리고 함께 경태를 기르던 A씨의 여자친구 김모씨(38·여)가 마각을 드러낸 것은 오래지나지 않아서였다.
◇유명해진 '경태아부지' 계정…여자친구가 불법모금
경태아부지 계정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던 여자친구 김씨는 지난해 3월 SNS에 '경태와 태희의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모금을 시작했다.
경태아부지 측은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아픈 아이가 둘이니 정말 힘이 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순식간에 2306명으로부터 1779만원을 모금했고, 약 3주 뒤에도 1만496명으로부터 6263만원을 추가로 모금했다.
그러나 이는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으려면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등록해야한다는 기부금품법 위반이었고, 이들의 기부금 유용 의혹이 제기됐다.
또 김씨와 A씨가 개인메시지(DM)을 통해 돈을 빌린 사람들로부터 돈을 갚지 않는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김씨와 A씨는 "A씨가 구속돼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피해자 6명을 속여 5억3630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후원금의 총 모금액과 사용처를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고, 빌린 돈도 대부분 상환하지 않고 잠적했다.
결국 폭로자가 이들을 고소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한 진정 등이 접수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이들은 대구에서 검거됐다.
◇치료비 아닌 불법 도박에 탕진…법정에선 '네 탓' 추태
수사기관이 이번 사건을 주도한 주범으로 판단한 여자친구 김씨는 구속된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임신 중절 수술을 받겠다는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막상 수술을 거부하고 뱃속의 아이의 아버지인 또 다른 남성 최모씨(33)의 도움을 받아 도주했다 다시 붙잡히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후원금과 빌린 돈 대부분을 반려견 경태와 태희의 치료비가 아닌 불법 스포츠 도박 등에 탕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법정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진 김씨가 경태를 이용해 돈을 벌려 혈안이었고 경태와 김씨를 사랑하는 저는 잘못되는 걸 원치 않았다"며 "김씨가 하나부터 열까지 죄를 떠넘기며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경태는 A씨의 강아지였고 널리 알려지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도, SNS 계정 관리도, 처음 글을 올린 것도 모두 A씨"라며 "저는 전혀 몰랐고 채무를 돌려막고 있다는 A씨의 말만 믿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재판부는 이들을 기부금 편취와 차용금 사기의 공범으로 판단하면서도 여자친구 김씨가 대부분의 금액을 편취했다며 주범으로 판단했다.
◇반려견 경태·태희는 동물구조단체가 구조해 보호 중
재판부는 "반려견의 건강을 우려하거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공감 등 선한 감정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며 "수법이 매우 불량하고 동기도 대단히 불순하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7년을,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와 김씨 모두 법원에 항소한 상태로 이들의 항소심 재판은 오는 3월14일 예정돼있다.
이들의 반려견인 경태와 태희는 어떻게 됐을까. 김씨와 A씨가 잠적·도피를 거듭하다 결국 수사기관에 붙잡히면서 경태와 태희의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뉴스1> 취재에 따르면 반려견들은 한 동물구조단체가 구조해 새로운 이름을 주고 보살피고 있는 상태다. 다만 이들은 기사화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