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캘러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샀던 물건 확인

입력 2022.12.19 09:15수정 2022.12.19 09:38
헬렌 캘러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샀던 물건 확인
사무엘 리 고객장부, 헬렌 켈러 구입 페이지...선유민 작가 촬영 /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파이낸셜뉴스] 세계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시각, 청각 장애인이면서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복지 사업가인 헬렌 켈러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을 방문해 고미술상에서 사무용 책상(서안, Writing Desk)을 구입했던 기록이 공개됐다.

한국문화재 소장가 로버트 마티엘리(Robert Mattielli, 97세)가 일제강점기 고미술상의 외국인 고객장부, 박수근 개인전 리플릿 등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관련 자료 3건 60점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했다.

19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올해부터 국외문화재 출처 연구 사업인 국외문화재 역사 테마 연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로버트 마티엘리의 한국문화재 컬렉션 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성균관대 김수진)를 진행했다.

현재 미국 오리건주에 거주 중인 로버트 마티엘리는 1958년부터 1988년까지 미8군 군무원으로 한국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총 1,946점의 한국문화재를 수집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티엘리는 사무엘 리가 1936년부터 1958년까지 고미술상 운영 시 작성했던 외국인 고객장부 1건, 마티엘리가 한국에서 고미술상 등으로부터 받았던 명함 58점, 그리고 1962년 미8군 SAC(Seoul Area Command) 도서관에서 개최된 화가 박수근(1914-1965)의 개인전 리플릿 1건을 재단에 기증했다.

덕수궁 맞은편 태평로에 위치했던 사무엘 리 고미술상의 고객장부는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 규모의 ‘한국문화재 구입 외국인 명단’으로 평가된다. 마티엘리의 회고에 의하면, 사무엘 리는 미국 미시건대학에서 공학을 배웠으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고미술품을 판매했다.

헬렌 캘러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샀던 물건 확인
로버트 마티엘리, 벤 코트 촬영 /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기를 거쳐 20여년간 그의 가게에서 한국 미술품을 구입했던 수백명의 서양인 및 일본인 고객 이름, 판매일자, 주소, 품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고객 중에는 헬렌 켈러(1880-1968)와 같이 유명한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헬렌 켈러는 1937년 7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한국을 방문했으며, 7월 14일 사무엘 리의 고미술상에서 사무용 책상(서안, Writing Desk)을 하나 구입했음이 고객장부를 통해 확인된다.

또 마티엘리가 한국생활 중 받은 명함 58점에서는 이 시기 고미술상, 표구상 등 외국인에게 한국 미술품을 취급하던 여러 상점들의 정보가 확인된다. 이를 추적한다면 1960~80년대 한국미술이 해외로 수집되어 나간 출처를 더 광범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기증받은 1962년 화가 박수근의 개인전 리플릿은 33점의 출품작 목록이 인쇄된 기존에 알려진 자료(이구열 수집, 리움미술관 소장)와 달리 11점의 목록이 추가 인쇄돼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1962년 미8군 SAC 도서관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총 45점의 유화 작품이 출품됐다고 추정해왔다.

그동안 알려진 박수근 개인전 리플릿에는 33번까지만 적혀있어 박수근의 구체적인 출품 목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박수근의 전시에 대해 연구해 온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이번에 기증받은 자료의 추가 11점 목록은 박수근의 SAC 도서관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 전체를 복원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며 해당 리플릿의 사료적 가치를 평가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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