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업고 1㎞ 넘게 뛰었다"...이태원 생존자 아버지가 밝힌 '그날의 기억'

입력 2022.11.01 05:25수정 2022.11.01 09:40
"딸 업고 1㎞ 넘게 뛰었다"...이태원 생존자 아버지가 밝힌 '그날의 기억'
이태원 사고 당시 장모씨와 딸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출처=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딸을 업고 1㎞ 넘게 달렸다"

지난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20대 딸을 극적으로 구조한 60대 장모씨는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하다”고 전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장모(62)씨는 사고 당일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놀러간 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딸은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로 “옆에 사람 다 죽었어”라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꺼냈다.

장씨는 무슨 얘기인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계속 통화가 끊어지는 탓에 더 이상 딸과 길게 통화하지 못 했다. 장씨는 “뭐야? 어디야? 무슨일 이야?”라며 초조하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딸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장씨는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하고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딸을 보호하고 있는 이태원파출소로 향했다.

딸은 “나 죽다 살았는데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며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 났는데 집에 가려다 맨밑에 깔렸어. 여기 사람들 다 죽었어. 살려줘 나 무서워”라고 장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장씨는 곧장 택시로 이동하면서 휴대전화로 딸이 얘기한 정보를 바탕으로 검색을 시도했다. 이어 이태원 부근에 도착했지만 교통 통제로 도로가 막혔다.

장씨는 차에서 내려 1.5㎞ 가량을 뛰었다.

목숨을 건진 딸은 다른 3명과 함께 파출소에 누워있었다.

장씨는 “딸의 상태가 너무 안좋아 빨리 병원으로 이송돼야 할 것 같았는데 사망자가 너무 많아 경찰과 소방이 그쪽을 먼저 대응하면서 딸 순번까지 오려면 최소 서너 시간은 걸릴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장씨는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보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택시라도 탈 수 있는 쪽으로 나가려고 딸을 등에 업고 1㎞ 넘게 뛰었다. 그러나 한참을 뛰었는데도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장씨는 도로를 통행하는 아무 차량이라도 얻어타려고 도움의 손길을 청해봤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안 됐다. 그 순간 장씨에게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와 병원까지 태워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이들은 장씨와 딸을 태우고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이곳도 앞서 실려온 사상자들로 이미 다른 환자를 받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씨와 딸을 태워준 젊은 남녀는 처음 본 낯선 부녀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도왔다. 장씨에게 사는 곳을 물어본 뒤 집 근처에 위치한 분당차병원 응급실까지 무사히 태워줬다고 한다.

장씨의 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끝에 고비를 넘겨 일반 병실로 옮겨진 상태다. 병원 측에서는 사고 당일 장씨의 딸이 장시간 압력에 노출되면서 근육 손실로 인한 신장(콩팥)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됐던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를 부착했다.

과거 경기도의원을 지낸 장씨는 전날 자신의 SNS에 이러한 내용을 올려 젊은 남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장씨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우리를 데려다준 젊은 남녀가 휠체어까지 갖고 와서 딸을 태워 옮겨다주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지금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서너 정도 시간이 걸렸다.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약소한 돈이라도 비용을 치르려고 했는데 한사코 안 받고 다시 건네주고 돌아갔다”고 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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