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근로자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SPL산재사망사고대책회의(이하 SPL대책회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소견과 현장 근로자 증언 등을 토대로 "숨진 근로자의 오른팔이 교반기의 회전날개에 걸리면서 몸이 빨려 들어가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자체 사고원인 분석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파리바게뜨 공동행동 상임대표 권영국 변호사는 "사고가 난 오전 6시는 마지막 소스 배합 작업을 할 시점으로 교반기 속 재료들이 잘 섞이지 않아 손으로 젓다가 감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날 오후 8시부터 10시간째 일했던 시점인 만큼 교반기 앞에 서 있다가 몸의 균형을 잃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2인 1조 매뉴얼을 본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었고 덮개가 있는 교반기도 덮개를 열고 작업한다고 했다. 생산 속도를 맞추려다 보니 안전조치는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며 "소스 투입 작업을 3인 1조로 해야 한다는 요구도 무시됐고 교반기에는 최소한의 사고 방지 장치(인터록)나 덮개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SPL 평택공장 근로자인 A씨(23)는 지난 15일 오전 6시 20분쯤 소스를 섞는 기계인 교반기를 가동하던 중 기계 안으로 몸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국과수는 A씨에 대한 부검 결과 오른팔 골절 소견을 냈다. 다만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다발성 골절이 아닌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냈으며 이같은 부검 결과를 경찰 등에 전달했다.
실제 안전 규칙을 어기고 덮개나 안전장치 없이 기계에 직접 손을 넣어가며 작업을 했다는 해당 공장 근로자 증언도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소스 배합기에는 덮개를 설치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편 이날 JTBC가 공개한 사고 다음날 촬영된 현장 사진에 따르면 작업장 한 켠에 교반기가 놓여져 있으나 이 기계를 덮는 덮개는 반대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JTBC와 인터뷰에서 "(3년 전 교반기 작업할 때도)그 위에 안전장치나 뚜껑이 전혀 없었다"며 "그냥 먼지 덮개용으로 점심 먹으러 갈 때 덮어놓고 가는 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원료가 제대로 안 섞이거나 하면 빨리 작업을 해야 되니까 손으로 하고 관행적으로 그렇게"라며 "매뉴얼에 의해 배운 게 아니고 선임자가 가르쳐주는 그대로 배웠다"라고 설명했다.
SPL대책회의는 사실상 최고 경영자인 허영인 회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등 계열사가 아닌 SPC그룹 차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편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책임을 통감하며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대국민 사과했다. 또 SPC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