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올 하반기부터 점차 해소되며 국내 완성차의 국내외 판매량도 3개월 연속 전년동월 대비 늘었다. 그러나 완성차 판매량 증가와 달리 국내 신차 출고 기간은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전월 대비 길어졌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해소되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더디고 그동안 쌓인 수요를 감당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한정된 차량용 반도체를 수출 차량에 더 많이 배정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해외 시장의 경쟁이 국내 시장에 비해 치열할 뿐만 아니라 최근 고환율로 인해 달러로 수익이 나는 해외 판매가 실적에 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이달 초 딜러들에게 고객 안내를 위한 납기표를 제공했다. 납기표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여전히 인기 모델의 경우 신차 출고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 특히 제네시스 GV80 가솔린 2.5T 모델은 이달 주문하면 30개월을 기다려야 신차를 받을 수 있다. GV80의 지난달 납기는 18개월이었다.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판매하는 차종 중 전달 대비 납기가 줄어든 모델은 일부에 불과하다. 현대차에서는 △제네시스 G90 세단 6개월→4.5개월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 2.5개월→1.5개월 △싼타페 디젤 12개월→11개월 △쏘나타 가솔린 2.5 2.5개월→2개월 △넥쏘 3개월→2.5개월로 0.5개월에서 최대 1.5개월 짧아진 수준이다.
기아에서는 △스포티지 LPi 12개월→10개월 이상 △니로 하이브리드 10개월 이상→8개월 이상 △스포티지 디젤 16개월→15개월 이상 △K8 3.5가솔린 3개월 이상→2개월 이상 △봉고 디젤 11개월→10개월 △K9 8~9주→6~7주 △모닝 8~9주→2개월로 납기가 줄었다.
반면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전달 20개월에서 24개월로,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20개월에서 24개월로 각각 4개월 가량 늘었다. 제네시스 G80 전기차는 5개월에서 7개월로,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그랜저 3.5 가솔린은 각각 6개월에서 7개월로 길어졌다. 지난달 출시된 아이오닉6의 경우 신차 출고까지는 18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아이오닉5와 EV6의 납기는 각각 12개월, 14개월로 전달과 같았다. 인기 모델은 대부분 전달과 비교해 납기가 줄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보통 완성차 판매량이 늘어나면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의 단축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완성차 5개사의 국내 판매량은 11만3656대로 전년 동월과 비교해 23.8% 증가했다. 이중 현대차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8% 증가한 5만6910대, 기아의 경우 11.8% 늘어난 4만9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난이 하반기 들어 점차 해소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더디고, 그동안 쌓인 수요적체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분석한다. 지난달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백오더는 여전히 100만대 이상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해소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며 "반면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해 부품 공급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디젤차에 대한 수요가 줄고,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특히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의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부품 주문부터 납품까지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동안 쌓인 수요를 고려하면 수급난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은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하반기 대비 나아진 수준으로,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2~3년이 더 필요하다"며 "기존에 쌓인 백오더 해소는 물론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로 체질을 바꾸며 반도체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상황으로, 여전히 완성차 업체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영향권 안에 있다"고 했다.
또 "완성차 업체의 경우 마케팅 측면에서 국가별 수급을 조율할 수밖에 없다"며 "차량용 반도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일부 국가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데, 최근 해외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 등이 강조됨에 따라 해외 시장 공급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