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5개월여 만에 수복한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주 도시 이지움에서 러시아군이 점령 기간 저지른 감금, 고문, 살인, 암매장 등 전쟁범죄의 흔적이 쏟아져 나왔다. 이지움에서 일어난 전쟁범죄는 올 3월 세계를 경악하게 한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대학살’보다 더한 참극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현지시간)까지 이지움 집단 매장지에서 시신 445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3월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지는 이지움에 대한 공습을 감행하였고, 4월 완전 점령했다. 이후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다섯 달 만인 지난주 퇴각했다.
이지움 주민들은 “그 기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지움 수복 이후 이지움 외곽 숲에서 시신 집단 매장지를 발견해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16일 시신 40여 구가 발견된 이후 시신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나무십자가가 꽂힌 땅속에서 발견된 시신 다수는 두 손이 묶여 있거나 목에 밧줄이 감겨 있었으며, 대부분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현지 주민들은 “일부 시신은 러시아군 공습으로 숨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 남성은 “5월 16일 아내가 거리에서 러시아군 집속탄에 맞아 죽었다”며 울부짖었다. 집속탄은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될 만큼 잔혹한 살상무기다. 이 남성은 숲속 매장지에서 아내의 시신을 찾아냈다. 미국 CNN방송은 “숲에 폭우가 내린 뒤에도 시신 냄새가 씻겨 가질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지움 생존자들은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고문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3월과 9월 두 차례 러시아군에 끌려간 막심 막시모우 씨(50)는 러시아군이 자신을 우크라이나 스파이라 주장하며 경찰서 지하 구치소에서 전기고문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막시모우 씨는 “군인들은 나를 사무실 의자에 앉히더니 내 손가락에 악어 이빨 모양의 클립을 채웠다. 그것은 구식 소련군 야전 전화기에 연결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병사가 기계 손잡이를 돌리면서 고문이 시작됐다. 나는 이후 쓰러졌고, 군인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고문은 40여 분간 이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민은 물론 외국인까지 가둬두고 학대한 고문실이 발견됐다”며 “지난 3월 스리랑카 시민 7명과 하르키우주 쿠피안스크 의대생들이 러시아군에 붙잡혀 지하에 갇혔다. 이들은 하르키우주 해방 이후 구출돼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는 부차에서 저지른 짓을 이지움에서 반복했다”며 “우리는 하르키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는 어디에나 죽음을 남긴다. 부차, 마리우폴 그리고 이제 불행히도 이지움. 러시아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전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