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마약 중독자의 고백 "처음 투약했을 때.."

입력 2022.09.17 07:03수정 2022.09.17 11:03
23년 마약 중독자의 고백 "처음 투약했을 때.."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23년 마약 중독자의 고백 "처음 투약했을 때.."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 소속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약 중독자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마약 중독은 처벌만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며 처벌보다 회복이 중심이 되는 마약 중독자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2019.6.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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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마약은 죽어야 끊을 수 있습니다."

23년간 마약에 손을 댔던 A씨(48)는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씨가 재활치료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일이 다짐의 연속이다. A씨는 "20년간 재활을 하는 사람들도 다시 손대는 게 마약"이라며 "죽을 때까지 안 했다면 그제서야 끊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약류 중독 경험자들은 약물에 한번 빠지면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때문에 마약 중독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중독자들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기보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재활·회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번의 경험이 죽을 때까지"…평생을 따라다니는 마약의 그림자

18일 뉴스1이 만난 마약류 중독 경험자들은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자력으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재활지도사 교육을 받고 있다는 A씨는 "중독자들은 처음 투약했을 때의 쾌감을 못 잊어 계속해서 마약을 찾게 된다"며 "그 한번의 경험이 머릿속에 평생 박혀있어 계속 괴롭힌다"고 털어놨다.

마약은 A씨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마약이 없으면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거나 화장실도 못 가는 상황이 올 정도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A씨는 중독됐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며 "그거(마약)를 했을 때만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느꼈고 못 하면 짜증도 났다"고 회상했다.

A씨는 단약(약을 끊는 것) 기간이 2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마약 중독에서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약을 끊었다'고 말하지만 마약은 평생 싸워야 하는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안 해야 비로소 끊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약 투약으로 복역하다 출소한 뒤 재활을 거쳐 회복상담사로 일한다는 B씨도 "마약사범들은 구치소에서 '이거(중독)는 죽어야 끝난다'고 말을 한다"며 "중독자들 90% 이상이 출소 후에 다시 마약에 빠질 정도다"고 고개를 저었다.

호기심에 처음 필로폰을 접했던 B씨 역시 자신을 중독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B씨는 "10년 동안 마약을 하면서 한번도 중독자라고 생각을 못 했다"며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을 안 하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말했다. 결국 B씨는 마약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B씨는 여전히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다. B씨는 "마약 중독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다"며 "출소한 지 3년 8개월이나 됐지만 매달 병원에 가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25년 동안 마약 중독자로 살다 20년째 중독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박영덕 마약운동퇴치본부 재활지도실장도 "마약은 담배나 술보다 훨씬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며 "뇌 손상도 담배나 술보다 빠르게 일어나 생명에 더 치명적이다"고 설명했다.

◇"범죄자 낙인보다는 치료를"…적절한 재활·회복 시스템 필요

이같은 상황에도 중독자들은 '범죄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실장은 "우리나라는 마약사범을 치료대상이 아니라 오직 범법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중독자들이 치료받기가 힘들다"며 "당연히 죗값은 치러야 하지만 단속만 하기보다는 치료를 한 뒤 사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재범을 막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박 실장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던 A씨 역시 "마약 때문에 (박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혹시 잡혀갈까봐 찾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며 "치료받고 싶어도 못 받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B씨는 "마약사범을 다들 조폭이나 흉악범으로 생각하는데 학생이나 회사원, 가정주부들 같은 일반인들도 마약사범이 된다"며 "마약을 질병이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하는데 범죄로만 봐서 재범 방지가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활 치료에 대한 국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전국에 21개의 마약류 중독자 전문치료병원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단 2곳뿐이다.

민간 주도의 마약 중독 회복 시설인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은 "정부에서는 식약처를 통해 마약퇴치본부에 마약 예방 홍보 등에 예산을 주지만 우리같은 민간 센터에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며 "일본에는 다르크 시설이 100 곳이 넘는데 우리나라에는 3곳뿐이다"고 토로했다.

장재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도 "현재 10대들의 마약사범 수가 너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예방 교육이 예산 부족으로 잘 안 되고 있다"며 "마약은 한 번 접근하게 되면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게 매우 힘들기 때문에 예방 교육이 지금보다 더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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