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AP·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블롬은행 지점에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채 권총을 든 여성이 들어섰다. 이 여성은 총을 꺼내 들고 책상 위로 올라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여동생의 계좌에서 돈을 찾으러 왔다"며 "나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쏘려고 온 게 아니다. 그저 나의 권리를 주장하러 왔다"고 소리쳤다.
또 이 여성과 함께 은행에 침입한 예금자 단체인 '예금자 절규'의 운동가들은 지점 곳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 했다.
결국 이 여성 일행은 은행 창구에서 1만2000 미국 달러와 1000 달러에 해당하는 레바논 파운드화를 받아들고 보안회사 직원이 도착하기 직전에 깨진 유리를 통해 지점 건물 뒤쪽으로 빠져나갔다.
자신의 '과격한' 예금 인출 과정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이 여성은 실제 이 은행의 고객인 살리 하피즈(28)로 밝혀졌다.
레바논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하피즈는 현지 방송과 인터뷰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강도 행세까지 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하피즈는 "은행 지점장에게 가족이 맡긴 2만 달러를 달라고 애원했다. 여동생이 암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가기 때문에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여러 차례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은행원들이 레바논 파운드화로 한 달에 200달러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고 결국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에 들어갈 때 가져간 권총은 조카의 장난감이었다"며 "여동생의 암 치료에 5만 달러가 든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난은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를 만나면서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현지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90% 이상 폭락했고 레바논의 은행들은 자금난에 처해 '뱅크런(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을 막기 위해 수백만 고객의 예금 인출을 제한했다. 레바논은 국가 경제가 계속 악화되면서 인구의 약 4분의 3이 빈곤에 빠졌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